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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The Irish Paradox(아일랜드의 역설)
[기고] The Irish Paradox(아일랜드의 역설)
  • 의사신문
  • 승인 2024.02.26 11: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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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만당 의대 졸업생 수' OECD 1위인데 의사 수입
의대 증원보다 진료여건 개선해야···강요 아닌 합의 필요

지난 2월 1일 정부가 발표한 패키지 정책 중 제대로 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의대 입학생 2000명 증원 정책과 진료권을 제한하는 정책들은 한국 의사들을 또 다시 진료실 밖으로 내몰고 있다.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임민식 회장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
임민식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회장, KMA Policy 특별위원회 위원

단 1년만에 의대 정원을 60%이상 늘리는 비정상적 증원을 통해서 정부가 약속하는 효과는 다음 두 가지로 축약된다. 1) 기피과 문제가 해결된다. 2) 지역에 의사들을 보낼 수 있다.

아래의 표는 OECD 자료 중에서 인구 10만명 당 의대 졸업생의 수를 나타낸 것으로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국민 모두가 한국이 꼴찌에서 2~3등하는 국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1등을 하는 국가는 어디인지 아실까? 자료에 의하면 아일랜드라는 국가이다. 

아일랜드를 잘 아는 한국인은 매우 드물 것 같다. 간단히 자료를 살펴보니 영국 근처의 섬나라이고, 인구 508만명 정도에 1인당 국민 소득이 10만달러에 가까운 아주 잘사는 나라이며 EU(유럽연합) 소속 국가라고 한다. 

잘 사는 나라답게 인구 10만명당 24.8명의 의대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OECD 평균을 대폭 끌어 올리고 있어 당연히 우리나라 복지부가 약속하는 것 같은 유토피아적 의료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리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에 회의에 참석했다가 ‘아일랜드가 의사 수입 국가’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충격은 필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OECD에서도 이런 현상이 실로 기이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고 ‘the Irish Paradox’라는 보고서를 낸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의대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아일랜드의 역설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권한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아일랜드는 자국민(EU / EFTA 소속 국가 포함)에게 의대 교육을 거의 무료로 제공하지만 그런 교육을 받은 의대 졸업생도 상당수가 아일랜드를 떠난다. 

2) 아일랜드의 의대 졸업생 중 무려 50% 정도는 외국인( non EU/non EFTA 국가 출신)이고, 아주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운다. 

3) 아일랜드에서 임상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의 인턴 과정이 필수인데, 아일랜드 의대를 졸업한 외국인에게는 인턴 배정이 되지 못하고 있고, 결국 외국인 졸업생은 졸업후 의사 활동을 위해서는 대부분 아일랜드를 떠나야 한다. 

즉 인구 10만명당 24.8명중 12명 정도는 OECD 자료의 평균을 올릴 뿐이고 거의 모든 의대 졸업생이 한국에 남아서 의사로 활동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자료이다. (이렇게 의대 졸업생의 수가 부풀려지는 사례는 폴랜드 헝가리 등 일부 EU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진다.)

4) 떠난 의대 졸업생들의 자리를 아일랜드는 외국에서 의사로서 기본적인 과정을 마친 외국 의사를 수입해서 메우고 있고 최근에 점차 그 비율이 올라서 아일랜드에 등록되어 활동하는 의사 중 42%까지 상향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수입을 해도 아일랜드의 의사는 인구 1천명당 2.9명으로 한국과 별로 차이가 없다. 

5) 의료 선진국 아일랜드에 와서 활동하던 외국인 의사들조차 아일랜드에 계속 머무르지 못한다. 외국인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시기가 되면 다시 아일랜드를 떠나게 되고, 그 빈 자리는 새내기 외국인 의사가 메우고 있다. 

6) 아일랜드를 떠나는 의사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졸업후 더 좋은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고,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 오히려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의료 시스템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각 나라마다 독특한 의료 정책과 의료 이용 관행 등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의도와 방향성이 있을 수 있다. 

아일랜드가 영어를 사용하는 유럽연합 소속 국가라는 것과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한국 의대 교육과정을 고려해서 한국 상황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진료 여건의 개선 없이 단지 의대생을 2000명 증원 시켜서 한국 정부가 약속했던 정책 효과 즉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료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피과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기피과 근무여건과 보상을 대폭 상향시키고 △지역의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정부가 해야하고 △강요가 아닌 합의를 통해서 한국 의료가 직면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the Irish Paradox’ 가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간의 권리 중에서 자유를 향한 권리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권리는 생명에 대한 권리처럼 기본적인 권리가 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선진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무고한 시민이 강제 노동을 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필요하다면 정부는 정당하게 계약을 맺고 상호 동의하에 근로를 행하게 해야 한다. 만약 강제 노동이 가능하다면 의사가 부족한 아일랜드에서 무료 교육을 통해 의대를 졸업한 아일랜드 국적 의사들의 외국 진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의대생을 아무리 많이 늘려도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면 의사는 부족해진다는 것과 직업에 만족하는 의사가 환자 옆에 남는다는 것이다.

<the Irish Paradox 원문 : https://www.oecd-ilibrary.org/sites/ef8dbec2-en/index.html?itemId=/content/component/ef8dbec2-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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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언 2024-02-26 12:48:11
이런 좋은 글이 많이 알려져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