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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생협 이사장 딸 ‘불법시술’ 감싸준 봉직의···法 “의료법 위반 무죄”
의료생협 이사장 딸 ‘불법시술’ 감싸준 봉직의···法 “의료법 위반 무죄”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4.02.05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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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식재판 벌금형 받자 사태 심각성 인식···정식재판 청구
“이사장 요청으로 ‘책임 인정’ 확인서 작성···내용 못 믿어”

병원 직원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형사처벌 위기에 놓였던 의사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병원 운영자로부터 거짓 진술을 종용받아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뻔했다가 뒤늦게 정식재판 절차를 통해 혐의를 벗은 것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4단독 고대석 판사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부과 의사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간호조무사 B씨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수도권의 한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하던 A씨는 2022년 5월 외국인 환자의 부유방 부분 윤곽주사시술을 B씨에게 맡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의료법은 누구든지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실제로 환자에게 주사시술을 한 사람은 의료생협 이사장의 딸이자 병원 팀장으로 일하던 C씨였기 때문이다.

C씨는 A씨의 지시 없이 몰래 환자에게 주사시술을 한 뒤 환자 측이 병원을 다시 찾아오자 “환자 측에 설명을 해 달라”고 A씨에게 부탁했다. A씨는 당황했지만, 환자와의 신뢰는 물론 C씨의 곤란한 처지를 감안해 C씨의 요청대로 해당 시술에 대해 설명해줬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환자 측이 ‘비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민원을 내자 관할 보건소는 현장 조사에 나섰고, A씨는 담당 공무원을 보지도 못한 채 의료생협 이사장이 시키는 대로 사실확인서에 서명했다.

게다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의료생협 이사장은 A씨에게 “이사장 자리를 C씨에게 물려줄 예정인데, 이번 일로 징계를 받으면 곤란할 수 있다”며 시술 지시는 A씨가, 시술은 간호조무사인 B씨가 한 것으로 해달라고 종용했다. 

결국 A씨는 수사기관에서도 ‘자신의 지시로 B씨가 시술했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이후 A씨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약식기소됐고, 법원은 약식재판을 통해 A씨에게 벌금형을 명령했다. 약식명령은 범죄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사건에서 정식재판을 열지 않는 대신 서류만 검토해 피고인에게 벌금·과료 등의 형벌을 내리는 절차다.

그제서야 A씨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호인을 선임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의료인이 개설하는 통상적인 의료기관과 달리 의료생협의 경우 비의료인인 이사장이 조합과 의료기관을 동시에 운영하는 구조적인 특성상, 단순히 봉직의에 불과한 A씨가 비급여 진료수익 등을 파악할 수 없는 지위에 있어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할 수도 없었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에 대해 고 판사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A씨와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와 B씨가 의료생협 이사장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했는데, 확인서 내용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B씨의 시술행위나 A씨의 지시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다.

1심 선고 이후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무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 변호인인 이은빈 변호사는 “사실확인서의 법적 효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요청에 따라 섣불리 서명해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뒤늦게나마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정식재판에서 사실확인서의 내용과 배치되는 증언 및 당시 상황을 적극적으로 다퉈 뒤집은 사례”라며 “사실확인서에 서명하고 그대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행정처분으로 연계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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