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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 아니면 무조건 받아라?” 응급醫, ‘수용곤란고지 표준지침’ 반대
“천재지변 아니면 무조건 받아라?” 응급醫, ‘수용곤란고지 표준지침’ 반대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4.01.26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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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 마련 과정에서 의사회 완전 배제···“설명·동의 구한 적 전혀 없어”
119 이송 책임 無, 책임전문의는 수용부터 최종치료 결과까지 떠안아
“최종치료 병원 이송 119가 책임지고, 의료진 법적 책임 감면하라”

“해준 것도 없고 해줄 것도 없지만 무조건 (응급 환자를)보내는대로 다 받으라는 지침이다. 그리고 모든 치료 결과의 최종 책임은 현장의 의료진들이 지라는 것이다.”

최종 배포가 임박한 ‘응급실 수용곤란고지 관리 표준지침’이 사실상 응급의료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지침은 119나 정부는 아무 책임도지지 않고 중증응급환자의 모든 책임을 응급실로 돌리는 것일 뿐”이라며 “현장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지속적인 반대와 경고를 무시하고 만들어지고 있는 표준지침에 심각한 유감을 표하고, 이를 강행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정부와 정책당국에 있다”고 강력 비판했다.

의사회에서 공개한 표준지침 내용에 따르면 유형별 응급의료기관은 유형에 맞는 응급환자가 이송됐을 시 천재지변이 없는 이상 절대 거절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이송 후 모든 결정 책임은 책임 전문의가 지도록 하고, 잘못된 이송에 대한 책임 소재는 명시되어있지 않다. 치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의료진의 법적 책임을 감면하는 등의 내용도 없다.

법률이 아닌 지침이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지침 위반 사항에 대한 조사와 행정처분이 뒤따를 수 있어 현장 의료진에게는 법률과 다름없다는 것이 의사회의 설명이다. 또 의사회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이 지연되자, 정부가 응급의료진에게 또 다른 족쇄를 채우기 위한 의도로 이번 지침을 마련한 것이라고도 봤다. 응급실의 환자 이송 거부를 금지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은 지난해 1월 현장의 반발로 개정이 지연됐다.

아울러 의사회는 이 지침을 마련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단 한 번도 의사회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상 구체적인 수용곤란 사유를 논의하기 위해 조직된 ‘중앙응급의료정책추진단’에 법 개정을 반대했던 응급의학의사회는 배제됐다. 복지부는 8차례 회의를 진행하면서 의사회에 지침안 내용에 대해 설명과 동의를 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라며 “의사회는 대한응급의학회와의 대책마련회의에서 지침안 반대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으며, 지침안이 이대로 확정 배포될 경우 모든 응급의학 전문의들이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을 막고자 보도자료를 배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회는 “응급환자 수용을 강제하려 하지 말고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상급병원 과밀화를 해결하고, 최종치료 인프라를 확충하라”라며 “최종치료가 불가능함에도 환자를 이송하겠다면 응급처치 이후 최종치료 병원으로의 이송을 구급상황관리센터와 119가 책임져라. 또 응급환자 강제 배정 시 담당 의료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전면 감면하라”고 요구했다.

끝으로 의사회는 “지금이라도 대한의사협회와 응급의학 전문의들에게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시작하고, 현장이 동의하는 지침과 정책이 마련될 때까지 시행규칙 개정 논의를 전면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이 지침에는 의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모든 조항들이 구체적으로 들어있다. 실제 시행될 경우 현장의 혼란과 피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장에서는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기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푸념한다. 많은 현장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떠났지만 아직도 정부는 무엇이 문제인지 언급하려 하지 않고 있다. 과밀화 해결과 취약지 인프라 개선 없이는 어떠한 응급의료전달체계도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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