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이순신대교, 사사고터널, 의대 정원
이순신대교, 사사고터널, 의대 정원
  • 전성훈 변호사(의협 법제이사)
  • 승인 2024.01.09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9)

10년 전쯤 여수로 여행을 갔다. 여수에 도착하여 식사하면서 어디를 가보면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식당 주인은 자랑스럽게 ‘이순신대교에 가보라’고 하였다.
  
차를 달려 찾아간 이순신대교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광양시와 여수시를 잇는 길이 2,260m의 이 현수교는, 개통 당시 세계 최고 높이인 270m나 되는 주탑 2개 사이의 거리가 1545m나 되고(1545년은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해이다), 해수면에서 상판까지의 높이가 80m나 된다고 했다.
 
현수교 중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일본 도쿄의 레인보우 브리지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잔잔하고 파란 남해바다 위에 살포시 얹어 놓은 새하얀 종이 다리처럼 보이는, 산뜻하고 미려한 이순신대교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건설하기 어려운 다리가 현수교라고 알고 있었기에,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수준에 올라왔구나 하는 ‘국뽕’이 뭉근하게 차올랐다. 비록 나중에 건설비용이 1조 700억 원이나 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헉’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어떤 글을 쓰면서 유명 사건과 사고들을 확인하던 중, 일본의 ‘사사고터널 붕괴 사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 사고는 2012년 일본 야마나시현 소재 사사고터널의 천장판이 붕괴한 사고이다. 1장에 1.2톤이나 되는 콘크리트 천장판 약 100장이 50~60m 정도 연이어 떨어져 주행 중이던 차량 3대를 덮쳤고, 9명이나 사망했다. ‘안전 대국’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은 이 사고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였기 때문이다. 사고 3개월 전에 5년 주기의 정기점검을 실시했지만, ‘육안 검사’만 했을 뿐이며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고에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이 터널은 1977년 개통된 이후 28년간 일본도로공단이 관리하다가, 2005년 일본도로공단 민영화에 의하여 설립된 ‘중일본 고속도로 주식회사’가 관리하게 됐다. 민간회사가 관리하게 되자 수익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덕분에 유지와 보수, 점검과 검사에 있어 시설물별로 우선순위가 생겼다.
  
사사고터널의 콘크리트 천장판을 둥근 터널 상단부에 매단 철제 구조물과 볼트는 1977년 터널 개통 이후 사고 당시까지 35년간 한 번도 교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장 문제가 없으니’ 유지와 보수가 나중으로 미뤄진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점검과 검사 역시 비용이 들지 않는 ‘육안 검사’만 실시했던 것이 쉽게 이해가 간다.
  
시원하게 뚫린 터널과 다리를 계속 사용하려면 계속 돈이 든다는 것을 일본의 사고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후, 이순신대교를 다시 보았다. 그러자 「한비자」에 나오는 ‘미자하’ 고사처럼, 그 멋져 보이던 이순신대교가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닌가. 확인해 보니, 이순신대교 개통 이후 작년까지 10년 동안 유지관리비용으로만 총 443억 원이 지출됐다. 개통 직후인 2014~2016년 3년간 총 57억 원이, 2017~2019년 3년간 총 117억 원이, 2020~2022년 3년간 총 188억 원이, 2023년에만 80억 원이 각 지출됐다. 그리고 2024년에는 200억 원이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처럼 유지관리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를 고려할 때 개통 후 10~20년 기간에는 4,000억 원이 지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건설 자체에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 20년 만에 건설비용의 절반 가까이가 추가로 드는 것이다. 이런 전망이 과장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유지관리비용을 나누어 대고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광양시가 이순신대교를 포함한 도로를 국도로 승격하여 국가가 비용을 대달라고 아우성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발전의 상징으로서 언제나 미덕으로 여겨졌던, 국뽕까지 차오르게 하는 멋진 사회간접자본(SOC)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작년 10월 보궐선거 이틀 후부터 갑자기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의료계의 이슈들을 모두 잡아먹는 블랙홀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정부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다른 중요한 의료정책들을 급하게 ‘끼워팔려고’ 하고 있다.
  
첫째 필수의료가 서서히 고사해 간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는 이를 방치해 왔다. 좋다. 이러한 정책적 실기는 오롯이 과거 정부들의 잘못이라고 가정하자. 둘째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여 ‘낙수 효과’를 얻자는 현 정부의 주장은 무식함 그 자체이다. 이것도 좋다. 정부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이슈를 ‘돈 문제’로 단순화해 보자. 의대 정원을 늘리면 국민의 의료비 지출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나라처럼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더 많은 의사가 존재하면 더 많은 의료행위가 시행되고, 더 많은 건강보험이 지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재에도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이 우려되고 있고,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의료비 폭증이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숫자를 늘리자는 것은, 건강보험료를 올리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정부는 공단 특사경을 도입하고 ‘심평의학’을 강화하여 의료비 지출을 관리하겠다고 내심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정부는 만능이 아니다. 현재 매년 수천억 원의 부당청구가 일어나는 ‘사무장병원’의 부당금 회수율은 6%에 불과하다.
 
다리나 터널조차도 충분한 검토 없이 무턱대고 지어 놓으면, 당장은 멋져 보이겠지만, 결국 국민이 그에 따른 비용을 치러야 한다. 개통 후 20년만에 건설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했다면, 이순신대교를 저렇게 ‘멋지고 비싼’ 다리로 지었을까?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는 만드는데도, 유지하는데도 돈이 많이 드는 사회적 인력 자산이다.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충분한 검토 없이 늘려 놓으면, 당장은 이런저런 분야의 정원을 채우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국민이 그에 따른 비용을 치러야 한다. 게다가 그 비용은 우리도 아닌, 다음 세대가 치러야 한다. ‘공정’을 앞세우면서 비용 절감, 지출 효율화를 외치는 현 정부가, 의료인력 관련 정책에 있어서는 왜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순신대교도, 사사고터널도, 의대 정원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