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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醫 "인프라 붕괴 막으려면 필수의료 특례법 즉각 제정하라"
응급의학과醫 "인프라 붕괴 막으려면 필수의료 특례법 즉각 제정하라"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12.2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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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특수성에 문외한인 사법리스크에 응급의료 붕괴 중
응급의사 때리는 일련의 판결들, 직업적 '자부심' 건드는 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이하 의사회, 회장 이형민)가 사법리스크로 인해 붕괴 중인 우리나라 응급의료 현장을 경고하는 기자회견을 2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개최했다. 의사회는 정부 당국에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을 즉각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3월 대구광역시에서 10대 청소년이 사망한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나며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실 뺑뺑이’라는 단어는 허상이다.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모든 책임이 응급의료진들에게 있다는 거짓된 주장이다. 병원 전 단계로 말하자면 이송을 위한 병원을 선정하는 과정이고, 병원에 도착한 상황이라면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병원간 이송단계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의료체계 붕괴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지난 13일 강원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대기 7시간 만에 70대 노인 A씨가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을 꼽았다. 그는 “119가 환자를 대기실에 내려놓고 간 것에 놀랐다. 119는 환자를 의료진에게 인계하는 것이 의무이다. 또 20명의 대기환자가 있었는데 2시간 만에 A씨가 호명됐다. 미국은 심폐소생술을 요하는 응급환자들을 시간 당 2명을 진료할 수 있다. 이는 지방병원의 과밀화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송거부금지 시행규칙’ 법안이 발효되면 이런 사례는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응급환자가 죽으면 민사로 막대한 비용을 청구당하고, 형사책임까지 지는 나라에서 누가 응급의료를 하겠는가? 응급의사들이 일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환자 생명 살린다는 자부심이다. 지금의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의 자부심을 건드리고 있다. 응급의학은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최일국 의사회 기획이사는 응급의료의 특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최 이사는 “중증 응급환자는 결과를 예측하거나 장담할 수 없다. 아주 짧은 순간에 치명적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100번에 한 두번은 기도삽관에 실패할 수 있고, 교과서대로 심폐소생술을 해도 살아나는 경우보다 사망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사법부가 응급의사들을 처벌하는 것은 의료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은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2013년 소아횡격막탈장 사망사건에서 응급의학과 의사가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 응급실 진료 후 소아과를 2번이나 추가로 방문했고 며칠 후 다른 병원에 입원해 사망했음에도 처음 응급실에서 횡경막탈장을 진단하지 못한 것이 주의의무 위반이고 추후 사망에 이른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2심과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바뀌었지만 재판을 받은 의사는 7년 동안 구속을 포함한 민사합의와 형사재판을 겪었다.

2014년 전공의 1년차가 흉통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민사에서 거액 판결을 선고 받은 사례도있다. 추가로 5년간의 형사재판을 통해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일국 이사는 “이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모든 흉통 환자는 아무리 드물더라도 대동맥박리 가능성을 확인해야 하고, 이를 위해 추가로 연간 100만명 정도의 흉통 환자들에게 흉부CT를 촬영해야 한다. 2000억원 정도의 의료비가 추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도 만성신장질환을 가지고 있던 중증환자가 악화돼 응급실에 내원해 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음에도 사망한 건에 대해, 단지 모니터링과 응급처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최선을 다했다는 증명이 없다며 5억원이 넘는 배상판결이 나왔다.

최일국 이사는 “기도삽관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가 방치됐을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현장을 전혀 모르는 잘못된 판단”이라며 “아무런 의학적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거액의 배상을 감당해야 한다면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는 계속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현장의 목소리도 전달됐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의대생들은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응급의학과에 지원하는데, 최근 들어 의료 소송이 많아지니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박단 회장은 “앞서 언급된 5억원 판결 사건이 전공의들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관련 의료진이 우리가 수련을 받으면서 배웠던 그대로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여러 번 다시 읽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의사회 성명서를 통해 “응급의료진들에 대한 과도한 사법판결들에 대해 깊은 유감과 절망적인 분노를 표한다. 반복되는 무리한 판결들은 우리나라 응급의학과를 선택하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응급의학전문의, 적농의들의 이탈과 지원율 하락을 통하여 응급의료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우리에게 자부심을 빼앗고 잠재저긴 범죄자로 취급하며 과도한 판결을 지속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미련 없이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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