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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의료계 10대 뉴스] 의료용 마약류 ‘성지’ 수면 위로···관련 제도 강화 예정
[2023 의료계 10대 뉴스] 의료용 마약류 ‘성지’ 수면 위로···관련 제도 강화 예정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12.27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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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남’ 단골 의원, 향정 처방량 최근 3년간 약 4배 급증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 하루 3만원으로 대체 가능해 실효성 없어

올해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가 불법 생산·유통되는 마약만큼이나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의료기관을 통해 마약류 투약을 일삼던 중독자들이 강력 범죄를 연달아 일으키면서 일명 ‘성지’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독자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리는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허술한 법망을 피해 식욕억제제나 ADHD 치료제 등 마약류 처방을 남발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오고 있었다.

지난 8월 일명 ‘롤스로이스남’은 향정신성의약품 2종을 투약한 후 운전을 하다 한 여성을 치어 결국 사망하게 했다. 이 남성은 범행 후 마약류 검사에서 케타민 등 7가지의 성분이 검출됐으며, 그 사유로 ‘피부과 시술을 위한 수면마취’를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사고 5분 전 강남구 논현동의 A성형외과의원 건물에서 비틀거리며 나온 모습이 포착됐으며, 심지어 같은 의원에 방문한 또 다른 환자도 비틀대며 나와 운전대를 잡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된 바 있다.

A의원의 향정 처방은 도를 모르고 불어나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의원의 향정 처방량은 최근 3년간 약 4배가 늘었다. 처방 현황을 자세히 보면 2020년 790명이었던 향정 환자는 2022년 1593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처방 건수는 같은 기간 1078건에서 3746건으로 약 3.5배 늘었고, 처방량은 1655개에서 6622개로 약 4배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처방 환자가 1433명, 처방 건수는 3058건, 처방량은 9140개로 이미 예년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약류 처방을 남발해도 의료기관이 받는 행정처분 수위는 지나치게 낮은 상황이다. 현행법상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 처분’은 하루 3만원의 과징금으로 대신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의원은 마약류 취급 내용을 보고하지 않고,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취급한 혐의로 지난해 4월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 13개월을 통보받았으나 과징금 1170만원을 내고 진료를 이어나갔다. 마약류 처방을 통해 얻는 수익이 과징금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이렇다 할 처벌이 없다보니 지난해 의원급에서는 ‘빅5’에서보다 더 많은 마약류 처방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마약류를 가장 많이 처방한 대구 달서구 소재 A의원은 3만1804명의 환자에게 2216만개, 1인당 평균 697개의 약을 처방했다. 이 곳은 식욕억제제 성지로 불리는 곳으로 마약류인 펜타민 등을 주로 처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내년부터는 안전한 마약류 처방을 위해 관련 제도가 속속 강화될 예정이다. 오는 6월부터는 마약류 처방 시 환자 투약 내역 확인이 의무화된다. 투약 내역 확인 의무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부터 시작되어 프로포폴과 졸피뎀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상 안전사용기준을 벗어나 처방한 의사에게 사실을 서면 통보하고 추적관리하는 ‘사전알리미’ 제도도 확대된다. 사전알리미 대상에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가 포함되며, 의사에게 가는 통보는 연 2회에서 6회로 확대된다.

한편 서울특별시의사회는 마약류 성지가 난립하는 업계 내 자정을 위해 전문가 단체에 일탈 기관을 제지할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마약류 과다 처방 기관을 파악하더라도 직접 할 수 있 수 있는 조치가 없다.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넣고 처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길어 그동안 해당 기관을 제지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라며 “전문가단체에 자정 권한을 줄 필요가 충분하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의료용 마약류 남용에서 마약 중독까지 이어지는 중독자 양산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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