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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동의 비밀
공릉동의 비밀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3.12.1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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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95)

10여 년 전 한 출판사에서 특별한 기획을 했다. 다양한 작가들을 섭외하여 특정 장소에서 일주일을 지내게 한 뒤 그 경험을 줄줄이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에든버러에서 일주일을, 칠레에서 일주일을, 하는 식으로 소위 ‘일주일 시리즈’가 여러 권 탄생했다. 그 가운데 독특하게 도시나 나라 대신 호텔 이름이 들어간 <하얏트에서 일주일을>이란 책이 있다. 방송국 PD면서 동시에 소설도 꽤 많이 써낸 이재익 작가가 일주일 동안 남산 하얏트 호텔을 출입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 이야기를 마치 시드니 셸던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버무린 작품이다. 그런데 중요한 대목은 아니지만, 내용 중에 뜬금없이 ‘공릉동’이 등장한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하얏트의 어느 바에 허영심 가득한 남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남자의 재력에 유혹되어 처음으로 그곳까지 따라온 어수룩한 여자에게 원래부터 단골인 다른 여자들이 불쑥 묻는다. 너 집이 어디냐고. 공릉동에 산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무리는 곧바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
  
“공릉동? 거기가 어디야?”, 또는 “공릉동? 우리 기사 아저씨 거기 산다던데.” 그 초짜 여자가 술에 많이 취하자 누군가 이런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공릉동 촌년이 오늘 왜 그렇게 마시냐? 노는 것만 봐도 촌티가 나요.”
  
소설적 재미를 위해 허구한 날 호텔 클럽에 몰려가 노닥거리는 강남의 일부 젊은이들을 일부러 무례하게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하필 내가 25년째 잘 다니는 직장의 소재지에 대한 폄훼는 아무래도 불편했다. ‘공릉역 2번 출구’란 말을 제목에 넣어 에세이집을 출간했던 나로서는 더더구나 속이 상할 노릇이었다. 지하철 7호선 공릉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인도로 죽 걷다 보면 원자력병원이 나오고, 그곳은 오래도록 우리나라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과 다름없었다는 메시지를 담았던 제목 아닌가. 지금도 여전히 공릉동 골목 곳곳에 희망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다소 ‘촌스러운 어감’ 때문에 혹시 이재익 작가처럼 공릉동에 편견을 가지는 사람 있다면 생각을 좀 바꿔주고 싶다.
  
최근에 우리 병원에서는 한 차례 유쾌한 소동이 있었다. 강당 로비 한구석에 오랫동안 걸려 있던 그림이 어쩌면 꽤 고가품일지도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전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교육을 받으러 왔던 외부인 중 미술품에 안목이 높은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는 남해 항구를 묘사한 200호 크기의 그림이 식수대와 쓰레기통으로 가려진 채 거의 방치된 걸 보고 교육 담당자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고 한다. ‘억대(億臺)’를 호가하는 그림을 저런 식으로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올해 72세인 작가 K 화백은 동백꽃을 비롯해 평생 남해 풍광을 그려 온 유명 화가로 그의 작품은 현재 호당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다만 1990년대 중후반 작품이니 그게 병원에 걸릴 무렵엔 그의 인지도가 오늘과 같진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는 이 오래된 그림이 어떤 경위로 들어왔는지 자료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정식 자산으로 잡혀있지도 않았다. 부랴부랴 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하면서 우리 원장님 이하 다들 갑작스러운 횡재(?)에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너도나도 눈을 크게 뜨고 병원 곳곳에 걸린 출처 불명의 그림들을 샅샅이 스캔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제목조차 안 붙어있던 K 화백의 그림을 두 점이나 더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 에피소드는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우리의 안목이 얼마나 부실한지 돌아보게 한다. 나는 공릉동 역시 서울의 동북부 변두리라는 지역적 특성과 세련되지 못한 이름 탓에 사람들이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눈을 크게 뜨고 요모조모 들여다보면 감탄할 만한 명품이 곳곳에 숨어있음에도 말이다.
  
공릉동은 원래 경기도 양주에 속한 땅이었다. 그러다 서울이 넓어지면서 1963년에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1973년 도봉구 신설 때는 도봉구로, 1988년 노원구 신설 때는 노원구로 그 소속을 옮겨 왔다. ‘공릉(孔陵)’이라는 별개의 능이 있는 게 아니라 행정구역 변천 과정에서 ‘공덕리(孔德里)’와 ‘태릉(泰陵)’으로부터 한 자씩 따서 동명을 지었단다. 대국민 인지도로 보면 육사와 태릉선수촌 덕에 ‘공릉’보다 ‘태릉’이 훨씬 앞선다. 태릉은 바로 옆 강릉(康陵)과 함께 ‘태강릉’이라 불리는데 태릉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셋째 부인 문정왕후의 묘, 강릉은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인 명종과 인순왕후의 묘다. 문정왕후의 남편 중종의 묘는 강남 삼성역 부근 ‘선정릉(宣靖陵)’ 중 정릉으로 부부가 강남과 강북에 떨어져 있는 셈이다. 다이내믹한 조선 왕실 이야기에 스르르 빠져들게 만드는 태릉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공릉동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맛있는 커피를 찾아 공릉동을 뒤지다가 수년 전 이형광 사장님의 ‘형광커피’를 발견했다. 형광커피 없이는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없다. 또한 그럴듯한 이태리 식당이 없을까 한참 돌아다니다가 몇 달 전 병원 바로 옆에서 간판도 없지만 멋진 곳을 찾았다. 테이블이 달랑 하나인 식당. ‘루치아’라는 세례명을 쓰는 셰프가 오로지 한 팀만을 위해 최상의 음식을 차려주는 곳.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최근에는 우연히 공릉동을 노래하는 시인 김재천을 알게 되었다. 공릉동에 첫 키스처럼 첫눈이 내리면, 공릉동 직박구리의 연애, 그쪽으로 가면 공릉동이 나와... 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의 공릉동 사랑은 끝이 없다. 뭔가 마음먹고 열심히 찾으면 보석과도 같은 장소와 이야기가 공릉동에는 틀림없이 있다.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곳. 그게 바로 공릉동의 비밀이다. 
  
얼마 전 공릉동 원자력병원 로비에 멋진 크리스마스트리와 그 옆에 앙증맞은 우체통이 놓였다. 성탄을 맞아 병원 교회에서 준비하신 거다. 예쁜 엽서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문을 적어넣으면 함께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왠지 기적이 일어날 것 같은 믿음이 밀려온다. 어쩌면 공릉동에 비밀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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