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창간 108주년 특집] “근무조건 비롯한 여러 제도 개선 함께 이루어져야”
[창간 108주년 특집] “근무조건 비롯한 여러 제도 개선 함께 이루어져야”
  • 의사신문
  • 승인 2023.12.11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수의료 위기' 의대 정원 증원이 해답인가?④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지난 10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 포함된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의료계가 뜨겁다. 수도권까지 파급된 필수의료 공백이 국가적 재난이 되었고, 그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의사 수 부족이라고 의견이 모이고 있는 것 같다.

필수의료는 생명을 구하고, 장해를 줄이고자 하는 보건의료의 근본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분야의 의료를 말한다. 필수의료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 공공보건의료라 할 수 있다. 건강한 국민의 삶은 국가공동체가 유지하는 기본이므로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필수의료이며 공공보건의료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의료는 매우 높은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자랑한다. 전체 병상 수, 의료 이용률, 의사, 간호사당 환자 수, 고가 의료장비 수는 OECD 평균 이상이거나 가장 많다. 하지만 보장성과 공적 재정 비중은 선진국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거기에다 인구당 의사·간호사 수와 공공병상의 비중에 이르면 말하기 차마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나라다.

국제적 기준으로 낙제점에 가까운 공공보건의료 수준 탓에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이라는 불명예가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국민이 가장 빈약한 필수의료서비스를 받는 나라라는 말이다.

취약지에서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공공병원은 의사 부족에 더욱 심한 타격을 입고 있다. 급여나 처우에서 민간병원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공공병원은 환자가 적어도 주요 진료과를 유지해야 하지만, 의사를 구하지 못해 제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의사 부족은 공공의료의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리며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필수분야 의사 부족은 지방의 정주여건을 악화시켜 지역격차를 가속화한다.

필수분야 의사가 왜 이토록 부족해진 것일까?

첫째, 병상 수와 의료 이용률이 선진국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의사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대학병원조차 입원환자를 돌볼 여력이 부족하다. 낮은 의료비와 자유로운 병·의원 이용은 ‘3분 진료’를 합리화하지만 진료의 질을 높이기는 어렵다.

둘째, 지나친 개원 쏠림이다. 중증질환 진료를 위해 훈련된 분과 전문의가 지역에 개원을 하고, 경증질환 진료에 치중한다. 이렇다보니 막상 필수진료를 다루는 병원, 특히 대학병원에서조차 의사가 부족하게 됐다. 실손보험과 맞물린 비급여의 팽창은 손쉬운 개원 후 고수익을 가능하게 하여 그나마 남아있던 병원급 의사의 이탈을 가속한다.

셋째, 정부의 낮은 교육 재정 투입이다. 의사 양성 과정에는 적정한 수준의 재정이 투여되어야 분야별 적정 수 책정과 체계적 배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각 의대와 수련병원별 요구에 맞추어 양성한 인력은 각 기관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키워질 수밖에 없다. 의사 인력을 공공적 관점에서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넷째, 의사 수의 절대적, 상대적 부족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그나마 비필수 분야와 수도권 대도시에 몰려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일명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인 변화는 의사들로도 하여금 힘들고 책임이 중한 분야를 꺼리게 한다. 대부분 필수의료 분야가 해당하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노령층의 증가로 의료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의료이용자의 기대 수준을 지금 정도의 의사 수로는 충족시킬 수 없다. 많은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 의대 정원 확대 추세를 거스르기 힘든 이유다.

하지만 현재 상태의 개선 없이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교육의 질 하락, 여전한 비필수 분야로의 쏠림, 의료비 급증 등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배출된 인력이 필수분야에서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근무조건 개선을 비롯한 여러 제도의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잉 공급된 병상을 줄여나가고 공공적 병상 자원을 지역 여건에 맞게 재배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분과 전문의가 개원보다 거점 병원 근무를 선호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에는 교수 정원을 늘리고 예산을 지원해 수익 창출보다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고, 사명감 있는 우수한 의사를 양성할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또 공공적 의사인력 양성이 가능해지려면 교육과 수련에 그만한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며, 이외에도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의 공공병원을 보완하고 늘려서 배출된 의사들이 지역 주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일하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등 이미 외국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안도 부정적인 점만 들추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검토해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사는 보건의료 분야의 지휘자이자 집행자로서 큰 책임을 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존재다. 최근 의대의 정원 확대 논란의 와중에 의사들이 마냥 이기적이고 독선과 아집에 빠진 존재로 국민의 눈에 비추어지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하지만 이렇게 보건의료의 정책적 주도권을 빼앗긴 책임이 의사들 스스로에게도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늘어난 후배 의사들이 의업을 선택했던 초심과 기대처럼 모두에게 존중받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진료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엄마가 아픈 아이를 안은 채 받아줄 병원을 찾아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은 이제 더는 없도록 해야 한다. 생명과 지역을 지키는 필수의료를 키우는 일에 앞장서, 옅어져 가는 의사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