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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8주년 특집] "전문가 의견 경청하고 장기적 계획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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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23.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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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위기 의대 정원 증원이 해답인가? ⑦
서연주 젊은의사협의체 공동대표

입시철마다 들썩이는 대한민국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수요조사라며, 2025학년도 최대 2,847명에 이르는 의대증원을 희망한다고 발표했다.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의사 수’를 늘리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려 한다.

그것도 의대 열풍 사교육 공화국에서 가장 손쉽게 인기를 끌 ‘의대 정원’을 늘리는 쪽으로 말이다. 역시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종 입시 커뮤니티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전략 설명회가 다뤄졌다. 

필수 의료진이 부족하니 의사를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 않겠냐는 논리는,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다. 전체 의사 머릿수를 늘리면 그 중 일부는 필수 의료 분야로 떨어지지 않겠냐는,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바라볼 때, 여기에는 2가지 관점의 큰 오류가 있다. 

첫 번째는 증원된 의대생이 배출될 때까지의 시차 동안, 필수의료 현장에는 훨씬 빠른 지각변동이 일어날 거라는 점이다. 

의대 증원을 선택할 때, 정부가 기대하는 ‘낙수 효과’가 의료 현장에 작동하는 시점은 약 10년 뒤이다. 하지만, 성급한 의대 증원 발표가 젊은 의사 사회에 몰고 올 또 다른 불안은, 지금 당장의 필수의료 공백을 채우고 있는 전문 인력의 ‘누수 속도’를 훨씬 빠르게 악화시킬 것이다.

결국 증원된 의대생이 배출되는 10년 이전에, 필수 의료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와르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 빠른 붕괴 속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소아청소년과’의 지원율 악화 현상이다.

사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인기과였다. 2018년 모집 정원 206명, 지원자 208명, 1:1의 경쟁률을 넘어 누군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쟁과’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5년이 흐른 2023년이 되자, 모집 정원 201명, 지원자 33명, 지원율 16.4%의 최악의 ‘미달과’가 되었다.

이와 같은 소아청소년과의 빠른 붕괴는, 2017년 말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시작되었다. 혹독한 환경에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진료하던 어느 의사 개인을, 의료사고 범죄자로 몰아 끌고 가는 모습을 매스컴이 대대적으로 방송하면서부터인 것이다.

두 번째는, 증원된 의대생들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할 거냐는 점이다.

실제로 의대 정원을 늘려서 배출된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사회에 부담만 가중시킨다. 개인이 어마어마한 사교육비와 의과대학 학비를 감당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대한민국 교육 구조에서, 국가가 전공 선택을 강제할 권리는 없다.

필수 의료 분야로 충원되지 않는 의사 수 증가는, 오히려 급격한 의료비 증가를 야기하며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을 물어본 결과, ‘낮은 의료수가’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응답한 의대생이 49.2%(399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가 19.9%(161명), ‘과도한 업무부담’이 16.2%(131명)를 차지하였다.

의대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 있지만, 이조차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필수의료 분야의 부족한 인력구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살아갈 날이 긴 젊은 세대들에게는, 미래를 의지할 만한 비전이 필요하다. 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의미 있게 증가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젊은 의사들은, 현재 그들의 눈에 비치는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본인의 미래를 예측하고, 보다 나아 보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선배처럼 살 자신이 없어요.’ 필수의료 분야를 떠나는 후배들이 가장 많이 남기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현장 의료인의 처우 개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 1번이다. 우리는, 현재 떠나가는 필수의료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지켜낼지 부터 먼저 고민해야 한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의료는, 무너져가는 댐을 단 한 뼘도 보수하지 못했다. 홍수로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의료현장의 왜곡된 구조를 해결하고, 번아웃에 빠진 필수의료진의 처우 개선부터 시급히 선행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에 진짜 필요한 의사를 늘리는 방향은, 숫자에만 매몰된 쉬운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의사들을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 대한민국 의사 인력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겨우 보이기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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