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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8주년 특집]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 전에 '과학-객관적' 근거 선행
[창립 108주년 특집] 무분별한 의대 정원 확대 전에 '과학-객관적' 근거 선행
  • 의사신문
  • 승인 2023.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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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호 대한의사협회 의정협상단장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부터 ‘의료현안협의체’를 운영해오면서 총 18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해오고 있다. 의협과 정부는 그간 많은 논의를 이어오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필수·지역의료의 붕괴’를 꼽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왔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확충 대책의 하나로 의대정원 확대를 제시하면서, 지난 10월 27일부터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입학정원 확대에 대한 수요조사를 진행했다. 필수,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만약 의대정원의 확대가 필요하다면 이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적정한 의사인력을 따져야 할 것이고, 미래의 의료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한 인력에 대한 과학적인 수급추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동안 정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정원 정책을 준비할 것이라고 확언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 정부는 각 의과대학의 수요조사를 발표하면서 심지어 최소 2000명에서 최대 4000명까지의 의대 정원 확대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의대정원에 대한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각 대학들과 그에 딸린 부속병원, 그들 지역의 정치인과 지자체, 모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발표되는 수요조사 결과는 현실을 왜곡하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변질되기 때문이다.

대학은 의대정원을 늘려 학교의 위상이 높아졌다며 자랑하려 하고, 부속병원은 값싸게 부릴 전공의들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들떠있고,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는 자신들의 표로 이어질 치적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진행된 의대정원 수요조사는 “고양이에게 얼마나 많은 생선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별반 무엇이 다르겠는가?

무너져가는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는 의대정원 확대와 같은 불확실하고 지엽적인 대책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다. 필수·지역의료가 기피되고 외면 받고 있는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아야 달아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의대정원을 그렇게 늘려 의료비가 상승하고 이대로 가도 2028년이면 건보재정이 적자로 돌아선다고 하는데 건보재정 파탄 및 국민에게 부담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앞으로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금까지 필수, 지역의료 무너뜨린 장본인인 정부가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또 다른 악수를 두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정부에서는 의사 수가 OECD 평균인 천 명당 3.4명보다 적은 2.3명이라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보듯 우리보다 의사 수가 훨씬 많은 이태리나 유럽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는지를 보면 단순 의사 수 비교로는 국민들의 의료 혜택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OECD 국가 어디서도 인구 천 명당 활동의사 수 같은 단순 비교만으로는 의사 수가 부족한지 충분한지 판단하는 나라는 없다. 진료 대기 일 수, 건강지표, 의료 만족도 등 다양한 지표를 가지고 판단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의사 진료 보기가 가장 쉬운 나라이다.  당일 예약환자 외래 대기시간은 21분으로 미국의 24.1일 보다 훨씬 의료 접근성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물론 유럽의 경우는 더욱 길어진다. 외래 진료 한 번 하려면 수 주간 대기하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10분 이내 동네의원에서 전문의 진료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나라다. 지표상으로 보아도 국민 1인당 연간 의사 진료 횟수가 14.7회로 OECD(5.9회) 국가 1위,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도 12.7병상으로 OECD(4.3병상) 국가 중 1위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 수 지표(인구 10만 명당)를 나타내는 ‘초과 사망율’ 지표는 우리나라가 52명으로 OECD 국가 중 2위였다. OECD 평균(1,499명)의 29분의 1 수준인 것이다.

이와 같이 높은 의료접근성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의사부족 문제를 논하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있으며, 국토면적당 활동의사의 수인 의사밀도도 12명으로 세계 3위이고, 또한 과거 한 해에 100만 명씩 낳던 출산율이 올해는 26만 명까지 줄어들어 인구증가율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활동의사 증가속도는  세계평균보다 훨씬 높아서 이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2030년대 중반에는 의사 수가 OECD평균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 의대 증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문의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는 13년에서 15년 정도 걸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때는 이미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상회하여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1% 증가할 때마다 의료비가 22%가 증가한다는 자료를 보더라도 국민들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 뻔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 강제지정제이기 때문에 모든 의료기관이 의료보험에 강제 지정되어 있어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보험료 증가는 눈에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럼 현재 아산 병원에서 개두술을 시행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이나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무엇일까? 한마디로 하이리스크 로우 리턴이기 때문이다. 필수의료를 수행하는 만큼 위험 요소는 높은데 그만큼 돌아오는 보상의 적다는 것이다. 올해 건강보험 의료비 인상률은 1.6%였다. 해마다 물가상승률이 5% 정도 이상이 되는데 의료비 증가율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방적으로 공급자의 의견은 무시하고 수요자의 의견만 반응하여 2-3%를 넘지 않도록 이렇게 수십 년간 지속하다 보니 기형적인 저수가가 된 것이다.

현재 의료보험 수가는 원가의 70% 정도 된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외과 의사인데 외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수술비는 미국의 18.2% 일본의 29.6%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데다가 요즘 의료사고에 대한 판결문을 보면 10억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나오는 판결은 물론이고 결과가 좋지 않다고 형사 처벌하는 판결도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니 누가 힘들여서 필수의료 과를 지원하려고 하겠는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제도로 바꾸면 된다. 자연스럽게 몇 년 안에 필수의료과로 의사들이 몰릴 것이고 이러한 문제점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정부는 현재 숲에 불이 붙었는데 한가로이 나무를 심자고 하지 말고 급한 불부터 꺼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살인적인 저 수가를 정상화하고 의료사고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에 임할 수 있는 의료 환경 만들면 필수의료는 당연히 정상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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