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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8주년 특집] 의대 정원 문제, '보수적'으로 접근해 작게 바꿔나가야
[창립 108주년 특집] 의대 정원 문제, '보수적'으로 접근해 작게 바꿔나가야
  • 의사신문
  • 승인 2023.12.11 0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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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울산의대 교수)
의사 많이 늘려서 '낙수효과'?···증가된 의료비 감당은?
필수의료 발목잡는 고질적 사법리스크 문제 해결해야
의학·한의학 의료 일원화로 통합하면 정원 630명 늘어

올해 초 영국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전문 치료를 받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국민들이 데모를 하였다.  무료로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일반의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의료 전달체계는 더 이상 영국의 자랑이 아니라, 기약없이 수술을 기다려야 하는 거대한 환자 대기실이 되었다.  한편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고용된 의사들은 6% 임금 인상은 현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실질 임금이 삭감된 것이라며, 전문의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파업을 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NHS내 빈 자리에 고용할 의사를 공급하기 위하여 의대 정원을 8600명에서 1만 5000명 가량 늘리고, 이를 위해서 4조 정도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는 ‘몇 억의 연봉을 제시하는 지방의료원에도 지원하는 전문의가 없다’는 방송이 나왔다.  지역은 의료 공급이 부족하고 서울로 환자는 몰리는데, ‘얼마나 의사 연봉이 많으면 그럴 수 있는가!’ 대중은 분노한다. ‘의사 숫자를 늘려라!’  

OECD 통계상 우리보다 의사가 많은 영국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역, 필수 의료를 위하여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하면, 의사들이 파업을 할까?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우리나라는 사적 영역에 의료 공급을 맡기고, 지불은 공적 보험제도로 운영하기 때문에 의사들의 민감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의료기관은 개설과 동시에 요양급여기관이 된다(당연지정제). 그래서 필수 의료 행위의 가격 즉 ‘수가’는 미리 정해져 있는데, 당연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개업의들은 법에서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비급여 진료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의료계는 의대 정원이 문제가 아니라 필수 의료 분야 수가를 올려야 한다는 처방을 한다.  그럼 수가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비급여 항목을 따라 잡을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은 되지만, 원하는 한도까지 올리기도 어렵고,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봉직의) 숫자가 개원의보다 훨씬 많은 현실에서 문제는 좀 복잡하다.

2009년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을 제고하기 위해 수가를 100% 파격 인상한 적이 있다.  추가된 수익으로 전공의 월급을 200만원 정도 인상하면 레지던트 지원율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전공의 급여를 인상한 수련 병원은 3곳에 그쳤고, 전문의를 추가로 채용한 병원도 없었다.

대도시 응급실 뺑뺑이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응급 의료는 항상 적자라고 병원이 하소연해서, 정부가 응급 의료 센터를 지정하고 보조하였는데, 센터로 지정된 병원은 최소한의 성의만 보이는 정도로 시설을 유지하고, 자체 투자는 늘리지 않았다.

의대 정원을 늘려서 비급여 시장이 차고 넘치면, 떠나간 의사들이 필수 의료로 돌아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얼마나 많은 의사를 배출하여야 ‘낙수효과’라고 하는 수치에 도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증가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필수 의료를 지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지역에서 10년 의무 복무를 하도록 하는 지역내 의대 정원 확대는 어떤가?  지역내 병원 의사 부족을 전공의로 채우겠다는 정책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책으로 해당과 수련을 마친 전문의가 다시 해당 분야에 취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지역 병원은 연봉이 높은 전문의 대신에 정부로부터 쉽게 공급 받을 수 있는 전공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2020년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를 채택하면서 공공의대생 선발에 적성을 고려하고, 지역, 필수 의료에 10년 의무복무 하도록 하는 정책에 대하여,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그것은 현재 (비공공?) 의대생들이 필수 의료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  의료계 문제점을 바라보는 두 시각이 있다.

모두 뜯어 고쳐야한다. 의사들의 독점과 전문직 카르텔 등등. 문제가 있지만, 하나씩 개혁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진보와 보수의 시각이다.

의료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주어진 조건 하에서 만들어진 생태계의 ‘불완전 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제 조건을 크게 바꾸면 그 균형은 크게 바뀌고, 작게 바꾸면 균형은 작게 바뀐다.  의대 정원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조건을 크게 바꾸는 것이다.  이 글은 보수적 시각에 쓴 글이다.  작게 바꾸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간 필수 의료의 발목을 잡고 있던 고질적 문제들을 푸는 작업을 우선하여야 한다.  산부인과 분만 사고는 산모와 신생아가 함께 손상을 받기 때문에, 손해배상액이 10억을 넘긴 것이 벌써 수년 전 이야기이다.  2000년대 전후 미국에서 10년 간격으로 두 번의 응급실 근무 의사 파업이 있었다.  처음은 의료과오 소송에서 손해배상액이 너무 높게 나온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손해배상액을 보전하기 위해서 만든 의료사고 배상보험료가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2017년 겨울 이대목동병원에서 소아 환자들이 여럿 사망하였을 때, 검찰이 의료진을 구속 수사하였고, 이후 해당 병원 전공의 집단 퇴직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10% 대를 경험하고 있다.  형사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정원 확대시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 점이 있다.

지난 2000년 의약 분업 시행 당시, 정부는 의사들의 조제권을 박탈하면서 350명의 의대 정원을 줄인 바 있다.  20년이 지났으니 제도 점검을 해야 한다.  문전 약국은 성시하고 그 외에 환자가 불편하고, 보험 재정 지출은 늘었고, 내과계 진료는 위축되었고, 동네 약국은 없어졌다.  항생제, 스테로이드 등 몇 가지 약물의 남용을 막을 방법을 다시 고안하고, 선택 분업으로 간다면 줄어든 의대 정원을 확대와 내과계 지원을 늘릴 수 있다.

오래동안 논의되었던 의료일원화 문제이다. 의학과 한의학을 통합하여 한의학 교육을 의대생에게 하고 의사 면허로 통합한다면, 의대생 정원 630명을 확대할 수 있고 내과계 지원을 늘릴 수 있다.

의료에 대한 민간 자본 투자를 좀 더 원활하게 할 필요도 있다.  서울 빅 5 병원 중에서 서울아산병원, 삼성의료원은 1980년대 중반 사회복지재단을 통하여 대규모 민간 자본이 의료계에 투자한 사례이다.  당시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있어서 이후 다른 민간 자본의 참여가 금지되었지만, 병원 운영 형태를 보면 국립 병원, 사립 병원간 차이를 찾기는 어렵다.  정부는 이번 정책 목표로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 국립 병원 재정 지원을 통하여 지역 완결형 의료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대규모 투자와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적자를 감수한 민간 투자를 마다할 필요가 없다.  늘어난 의대 정원을 배분할 때는, 반드시 지역, 필수 의료 운영 계획을 확인하고, 기여 정도에 따라 정원을 배분하면 된다.

정원 확대 없는 의료 개혁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하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 늘리는 의대 정원은 어차피 10년은 지나야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앞으로 노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의료 수요가 증가한다고 하지만, 그 시기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인구는 급격한 감소를 겪게 된다.  늘어난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 수요를 의사가 담당할지, 의사 감독하에서 간호사가 담당할지 아니면 독립적인 전문간호제를 발달시킬 것인지도 고민할 문제이다.  현재 의료계 여론 조사에 의하면 어느 정도 정원 확대 정도는 수긍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차 정원 확대하고, 그 이상 의대 정원을 늘릴 계획이라면 그 근거를 제시하고 타당성을 검증받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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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23-12-11 23:12:16
탁월한 식견이시네요. 이런 전문가가 의료정책에 관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