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창립 108주년 특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창립 108주년 특집]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의사신문
  • 승인 2023.12.11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수의료 위기 의대 정원 증원이 해답인가?⑤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 (중앙의대 이비인후과 교수)

의대 증원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마다 필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The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1886년에 R.L.B. 스티븐슨에 의해 발표된 이 글은 자비심 많고 학식이 높은 지킬 박사가 점점 추악한 하이드로 변신하고, 마침내 하이드는 살인을 하고 경찰에 쫓기는 순간 자살하는 내용이다.

지킬 박사는 인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모순된 성품을 약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을 만들었다. 하지만 박사 스스로 복용하면서 점차 악이 선을 이기게 되어 약을 먹지 않아도 하이드로 변신하게 되고, 지킬 박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이중인격을 표현할 때 많이 언급되는 유명한 소설이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같은 내용들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정부가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의대 증원을 위한 수요조사를 하고 있다. 단순히 의사 수만 늘리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의대 증원은 이중인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정책의 오류나 잘못을 보지 못하고 선한 의도라는 이유로 정책을 강제로 밀어붙일 경우 나중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인 의사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문제점을 찾아 해결할 필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좋지 않은 국민 여론을 잠재우고자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고민하지도 않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 상황의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제언을 하고자 한다. 

지난 7월 OECD에서 발표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에서 2021년 임상 의사 수가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서 두번째로 적었다. 또한 국내 의학계열 졸업자 역시 인구 10만명당 7.3명으로 OECD 국가 중 이스라엘(6.8명), 일본(7.2명)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의사 수가 부족하니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의사 수가 적어 국민들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해서 모든 보건 지표가 나빠야 한다. 하지만 의료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OECD 보건지표가 매우 좋은데, 이 중 기대수명, 영유아 사망률, 급성기 의료 평가, 암 관리 의료질 평가 등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좋았다.

특히 회피가능 사망률(AM: Avoidable Mortality), 의료접근성, 도시-농촌 간 의사 분포 차이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이와 같이 모든 보건지표를 최상위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의료자원을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의사 수보다 다른 나라들의 의사 수가 과하게 많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단편적인 OECD의 데이터들을 참고해서 정책을 세우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최근에 ‘응급실 뺑뺑이’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발생되었다고, 언론에서 계속 기사화 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 체계를 가지고 있는 가까운 일본에서도 2008년도에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있었다.

일본 응급의학회에서는 취약한 응급의료체계가 사망사고로 이어지자 성명서를 냈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응급의료 재구축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그 때 당시 일본의 노인인구는 22.1%에 인구 천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2023년 현재 노인인구 18%, 의사 수 2.6명인 우리나라보다 의사 수가 훨씬 적었다.

하지만 일본은 섣불리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았고, 오히려 캐나다를 벤치마킹하여 응급의료시스템을 개편했다. 일본형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 체계인데, 응급의료지원센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할 시 환자를 분류하여 경증 환자는 의원급(1차) 야간 응급실로,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지역 중소병원(2차) 응급실로, 중증 응급 환자는 종합병원(3차) 응급실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2023년 현재 일본에는 더이상 ‘응급실 뺑뺑이’는 없다. 우리나라도 과거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을 담당하는 ‘1339응급콜’ 시스템이 있었는데, 2012년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119법)」 개정으로 ‘1339응급콜’이 119로 통합·폐지 되었다.

그런데 「119법」이 개정된 후 소방대원들이 응급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대형병원으로만 보내니 효율적으로 환자 분배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응급실 내원 환자의 90%가 경증 환자로 차지하게 되면서 정작 중증의 응급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응급실 뺑뺑이’가 생긴 것이다.

'의대증원'은 이중적 이중적성격···나무가아닌 '숲'을 봐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적지만···의료 수준은 '최상급'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 의료시스템 개편이 먼저 

따라서 정부는 의대 증원 계획보다 먼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를 신속하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필수의료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면서 ‘소아과 오픈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소아인구의 감소로 인해 저수가인 현 급여체계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유지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지역의 소아청소년과는 점점 문을 닫게 되었다. 진료 받을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가 없으니 ‘소아과 오픈런’은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은 소아청소년과 오픈 시간에 맞추어 환자가 잠깐 몰리는 거고, 낮시간부터는 환자가 없어서 거의 운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소아 인구를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없다면 소아청소년과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 또는 현실적 수가 적용이 필요하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소아청소년과가 다시 살아 날 수 없다. 

작년에 자신이 직원으로 근무하던 상급종합병원에서 30대 간호사가 출근 직후 뇌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붕괴되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국회의원들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공공의대 설립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법안을 발의 했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필수의료나 지역의료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대를 만들어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는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공공의료기관이라 불리는 국립대학병원이나 지방의료원이 ‘공공’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현재는 민간의료기관과 진료 경쟁을 하고 있어서 차별화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2023년 OECD 데이터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다. 더 이상 지방에 의료원을 건립해서 병상을 늘리는 것은 하지 말고, 중증의 환자들이 지방에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거점의료기관을 육성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셋째, 의사들이 지방에서 근무하고 싶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공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맹목적으로 의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넷째,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의사밀도 또한 높은데, 어디에서 치료를 받아도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안전하고 빠르게 이송할 수 있도록 지방 환자에 대한 이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구급차와 헬기를 이용해 시도의 행정구역을 넘나들며 환자를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이를 관리할 수 있도록 소방청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공공의대 신설이나 의사 수 증원보다 위와 같은 방법들을 먼저 시행해 보고 나서 고민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