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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언 발에 오줌 누기
성냥팔이 소녀의 언 발에 오줌 누기
  • 전성훈 변호사(의협 법제이사)
  • 승인 2023.12.05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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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8)

바야흐로 12월, 연말이다. 예전에는 곳곳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와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을 자연스럽게 알렸다. 하지만 불경기 탓인지, 인심이 변한 탓인지, 코로나 탓인지, 최근 들어서는 보고 듣기 쉽지 않다.

서구는 오랜 기간 기독교 사회였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문학 작품들이 많다. 지독한 구두쇠인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을 만나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새사람이 된다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부부가 서로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계줄을 사고, 남편은 자신의 시계를 팔아 부인의 머리빗을 산다는 O.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역시 유명한 작품이다.

이런 해피 엔딩, 콩트적 엔딩과는 다른 결말의 작품도 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밤,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거리에서 누더기 차림의 성냥팔이 소녀가 지나는 사람들에게 성냥을 팔고 있었다. 아무도 성냥을 사 주지 않아 소녀는 돈을 벌지 못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맞을 것이 두려워서 소녀는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게다가 다 떨어진 신발 한 짝은 난폭한 마차를 피하다가 잃어버렸고, 다른 한 짝은 동네 말썽꾸러기 소년들한테 빼앗겨 버렸다.

맨발의 소녀는 결국 추위를 피해 인적 드문 골목길에 앉았다. 그리고 손이라도 녹이려고 성냥불을 켰다. 그런데 성냥 하나를 켤 때마다 신기하게도 소녀가 마음속으로 늘 바라던 따뜻한 난로, 멋진 저녁식사, 크리스마스 트리 등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소녀는 그것들을 황홀하게 바라봤지만, 성냥불이 꺼지면 곧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소녀가 세 번째 성냥을 켜자 생전에 소녀를 무척 아껴주셨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였다. 소녀는 너무나 반가웠고, 할머니가 사라져 버릴까봐 필사적으로 남아있는 성냥을 전부 꺼내어 불을 붙였다. 하지만 성냥불이 모두 꺼지자, 소녀는 점점 흐려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붙잡으려 애쓰며 울부짖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발 절 두고 가지 마세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따뜻하게 웃으며 소녀를 끌어안았고, 소녀는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 옆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도 있었다. 신기하게 소녀는 더 이상 춥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크리스마스 아침, 사람들은 골목길에 쓰러져 온몸에 눈이 쌓인 채 얼어 죽은 성냥팔이 소녀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 어제 성냥을 팔아주지 않고 소녀를 지나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얼어 죽은 소녀가 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위대한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왜 이렇게 슬픈 결말의 동화를 썼을까? 소설이 쓰여진 19세기 중반은 자본주의의 광란기였고, 노동자의 생활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비명에 대해 정부는 황당하게도 ‘구걸 금지법’ 제정으로 응답했다. 노동자들이 영락하여 하층민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실은 처벌받지 않기 위해 거래라는 외관을 빌어 비럭질하는 ‘구걸하는 소녀’였다. 안데르센은 시대의 병폐와 그 원인과 현상을 호도하려는 부당한 시도를 고발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1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의대가 설치된 40개 대학교들은 모두 ‘증원’ 의견을 냈는데, 2025학년도 증원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최소는 증원 ‘즉시 가능’ 인원이고, 최대는 증원 ‘희망’ 인원이라고 한다. 게다가 각 대학교들은 2030학년도까지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 추가 증원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의료계는 황당해 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최고학력 노동자를 늘려주겠다는데 마다할 리 없는 각 대학교들에게 ‘몇 명 필요해?’라고 물어보는 수요조사 자체가 황당하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비교해 보자. 대한민국은 매년 공무원을 3만 명 전후로 채용하고 있지만 각 부처는 만성적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각 부처들에게 ‘몇 명 필요해?’라고 수요조사를 하고, ‘수요조사 결과 등을 고려하여 2025년부터 공무원을 6만 명씩 채용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이것이 정상인가?  

또한 의료계는 분노하고 있다. 정부가 의학 교육을 조선시대 서당 교육과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증원의) 대전제는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가능한지이다”라고 말하면서 ‘의학교육점검반’의 서류심사와 현장점검 등으로 교육 인프라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요조사 결과라면서 현재 정원의 2배를 거리낌 없이 발표한 것 자체가 ‘책상과 의자만 추가하면 된다’는 시각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2022년 기준 교수 대 학생 비율은 하버드 의대 17.5 대 1, 도쿄 의대 3.2 대 1, 미국 의대 평균 2 대 1, 우리나라 의대 평균 0.63 대 1이다. 정부는 이 비율이 0.3 대 1이 되면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비책이 있는 것일까?  

의료계와 정부는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에 공감하고 9.4 의정합의에 근거하여 반년 이상 협의를 계속해 왔다. 그런데 보궐선거 이틀 후 출처 불명의 ‘의대정원 확대 추진’ 뉴스가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건복지부는 태도를 바꾸어 ‘수요조사’를 강행했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1월까지 보건복지부의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들은 터무니없는 수가, 과도한 형사처벌, 무엇보다 원인을 잘 알면서도 방치해 온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받아 왔다. 그로 인해 바위에 물이 스며들듯 오늘의 위기에 이르렀음에도, 정부는 이를 해결하겠다며 뜬금없는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의 광란을 방치한 19세기 정부가 오히려 ‘구걸 금지법’을 제정하여 문제의 원인과 현상을 호도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냥팔이 소녀는 비참한 현실을 죽음으로 벗어났기에 웃으며 죽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학 교육이 망가지고 의료의 질이 저하되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될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웃으며 죽을 수는 없다. 성냥팔이 소녀의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근거도 없고 효과도 없을 의대정원 졸속 확대 추진을 정부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 필수의료 재원 확충 방안 등 진정성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여 의료계와의 대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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