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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사와 강아지
최 이사와 강아지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3.11.21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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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역 2번 출구 (94)

해군 군의관을 마치고 원자력병원에 입사한 해가 1998년이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최 이사도 아마 그 즈음에 진단기기와 시약을 취급하는 다국적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했을 것이다. 20세기 끝 무렵 병원 진단검사실 전문의와 업체 관계자로 처음 만났지만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진중하고 세심한 그가 마음에 들었다. 최 이사는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금세 알아차리고는 항상 기대 이상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었다. 성실했던 그는 평사원으로 시작하여 차근차근 승진했고 마침내 그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 
  
존댓말을 쓰며 언제나 서로를 깍듯이 대했지만 근 25년 세월 동안 얼굴을 보다보니 웬만한 죽마고우 이상의 친근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마침 그 집 아들과 우리 집 쌍둥이가 같은 해에 태어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가족의 안부까지 묻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샌디에이고에 연수를 갔을 때도 최 이사는 LA에 올 일이 있으면 나와 식사 한 끼를 하기 위해 200km를 내달려 굳이 우리 동네까지 찾아오곤 했다.
  
미국 연수에서 돌아온 직후,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아이가 느닷없이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개를 싫어했던 아내는 달팽이, 사슴벌레, 고슴도치 등등 손이 덜 가는 것들을 차례로 사주면서 딸아이를 달래보려 했지만 그런 종류의 고만고만한 대체제로는 필사적인 강아지 타령을 중지시킬 수 없었다. 결국 목욕시키기, 대소변 처리 등등을 딸이 직접 하겠다는 서면 각서를 받고서 강아지를 들이기로 했다.
  
모녀가 그렇게 합의를 본 것까지는 좋았는데 개를 구해오는 것은 아빠의 몫이었다. 품종까지 ‘몰티즈(Maltese)’로 딱 정하고서 통보를 하니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여성들의 지시를 어떻게든 속히 이행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반려견 키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조언도 구하고 인터넷도 막 뒤적이며 ‘개’ 고민을 할 때쯤 구세주처럼 최 이사가 나타났다. 본인 친척 중에 몰티즈를 키우는 분이 있는데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았다는 복음과 함께.
  
그래서 입양하게 된 강아지가 우리 집 ‘빙고’다. 미국 동요에 등장하는 ‘빙고’는 농부가 키우는 개의 이름이다. 동시에 그날 최 이사의 말을 듣고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감탄사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인연은 최 이사도 똑같은 어미가 낳은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미 개 이름이 ‘콩쥐’였기에 최 이사는 자기가 데려간 암놈 강아지 이름을 ‘콩심이’로 지었다. 아마 개 모녀가 모두 작았기에 이름에 ‘콩’자가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후 최 이사와의 대화에서는 강아지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당연히 두 녀석 생일이 같았기에 매년 생일날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 따위를 카톡으로 교환하면서 양쪽 가족 모두가 즐거워했다. 명색이 오빠라는 빙고 녀석의 지능이 콩심이에 비해 많이 낮은 것 같아 좀 걱정되긴 했지만 다행히 두 녀석 모두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었다.
  
두 집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을 선물해주던 빙고와 콩심이는 올해로 만 12살이 되었다. 어느 새 ‘노견(老犬)’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된 것이다. 두어 살 위인 엄마 ‘콩쥐’도 아직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최 이사에게 몇 차례 “이 녀석들 더 늙기 전에 언제 한강 고수부지 같은 데서 가족상봉의 기회를 만들어봅시다”라고 제안했다. 
  
따뜻했던 어느 봄날, 빙고 가족의 이른바 ‘패밀리 리유니온’을 본격적으로 계획할 때쯤 최 이사가 수심 가득한 목소리로 콩심이가 요사이 활동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퇴근할 때마다 현관문 열리기 무섭게 깡충깡충 뛰면서 반기던 녀석이 영 힘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고 보니 빙고 또한 자기 침상에 드러누워 꼼짝 않고 잠만 자는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았다.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강아지들의 처지가 안쓰러웠던 우리는 잠시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나누었다. 최 이사와 강아지 이야기를 나눈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부산에서 열렸던 지난 춘계학회 때 최 이사네 회사는 전시장에 큰 부스를 차렸고 거기서 그와 잠시 조우했다. 그런데 불과 몇 주 뒤 최 이사가 입원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학회 직후 갑자기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복수가 차 있었고 간암이 상당히 진행되어있었다고 한다. 학회장에서 건강해 보였던 최 이사는 그렇게 말기 암환자가 되어 한 달 반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행여 콩심이 아플까 그리 염려하더니 정작 자기 몸은 살뜰히 돌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나는 우리 빙고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쌍둥이 여동생 콩심이가 겹쳐 보이며 내 시야가 부옇게 흐려졌다. “콩심이는 제가 누우면 냉큼 제 배 위에 올라오는 걸 아주 좋아해요”라면서 미소 짓던 최 이사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콩심이도 아마 자기를 그토록 예뻐해 주던 최 이사의 빈자리를 한동안 느끼지 않을까.
  
나는 지금껏 스키장에 가 본 적이 단 한 번 있다. 요즘 아이들은 스키를 열심히 배우니까 아빠도 탈 줄 알아야한다며 어느 겨울 최 이사가 병원에서 멀지 않은 야간 스키장에 날 데려 간 것이다. 그날 눈밭에 무수히 넘어지고 뒹굴면서 스키장 온 걸 후회할 때 최 이사는 손을 내밀어 나를 계속 일으켜주었다. 능숙한 스키어인 그의 바람과 달리 나는 스키를 바로 접었지만 그때의 그 손길을 기억한다. 장례식장에서 우리 애들과 동갑인 상주에게 아빠를 회고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이제 아저씨가 네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아쉽지만 콩심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최 이사가 없으니 강아지 가족 모임도 추진동력을 잃었다. 다만 난 그동안 SNS에서 최 이사와 서로 주고받았던 강아지 사진을 열심히 모아 정리하는 중이다. 언젠가 녀석들마저 훌쩍 떠나버렸을 때 오래도록 들여다 볼 이 추억의 사진첩 서문엔 밀란 쿤데라의 말을 넣을 것이고.   
  
"개들은 천국을 향한 우리의 연결고리입니다. 그들은 사악함, 질투, 또는 불만을 모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후 산허리에 개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고 평화 그 자체였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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