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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故 송상환 선생님을 기리며
[기고] 故 송상환 선생님을 기리며
  • 의사신문
  • 승인 2023.11.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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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송상환 선생님

전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님이시자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 초대주임교수이셨던 송상환 선생님께서 지난 11월1일 향년 92세로 타계하셨습니다. 

국내 산부인과 학계의 최고 원로로서 후학들을 이끌어 주시고, 특히 여성건강과 보건교육에도 많은 유산을 남기신 선생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선생님을 회상해 봅니다.

선생님은 1931년 경상남도 출신으로 1951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의학에 뜻을 품고 연세의대에 재학 중 터진 6.25 전쟁 중에는 통역관으로 참전하여 국가 유공자 훈장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1958년 연세의대를 졸업하셨고 1963년 산부인과전문의가 되신 후에는, 보건학에 뜻을 두시어 미국 Johns Hopkins의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보건학 석사가 되셨고, 1964년에는 미국 Chicago대 사회학교실에서 연수를 마친 후 귀국하시어 1972년까지 연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를 역임하셨습니다. 

연세의대 재직 중에는 미국 국무성초청으로 미국 모자보건 및 의학교육 시스템을 섭렵하셨으며 일본 공중보건연구원 방문교수도 역임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특이점은 산부인과 임상교수로 그쳤던 것이 아니라 여성건강 및 보건, 의학교육 전반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셨던 것으로서 이는 국내 산부인과학계 후학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연세의대 교수로 재직 중에 선생님은 1968년에 개교한 신설 한양의대로 오시어 부속병원이 개원한 1972년, 산부인과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필자의 의대생 시절, 멋있는 풍채에, 젠틀한 말씀에, 유머스러운 강의에, 게다가 미남이기까지 하셨던 선생님은 우리 의대생들에게 인기 만점 교수님이셨습니다. 

필자가 산부인과를 전공하게 된 연유는 오로지 선생님을 닮고 싶다는 이유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를 지원하였고 치열한 경쟁자들 중에서 선생님은 끝내 저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1977년 3월, 전공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저는 결국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해 10월 선생님께서 한양의대를 사직하셨기 때문입니다. 

한양의대 산부인과학교실을 떠나신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좋은 책을 보시면 전화를 하셔서 “박 교수, 책 한권 보내 줄테니 열심히 공부하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공부를 채 마치지 못했는데, 젊을 때 열심히 하세요. 교실이 열심히 하니 너무 보기가 좋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교실에 훈훈한 정을 주셨습니다. 

교실의 송년회에 참석하시면 언제나 좌중을 유머로 휘어잡는 건배사를 하시며 후학들과 스스럼없는 교류를 하셨습니다. “사랑은 베푸는 것입니다”라 하시며 아낌없이 큰 사랑을 후학들에게 베푸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큰 사랑을 이제 저도 후학들에게 마음껏 나누려 합니다. 

선생님은 개원 후에도 선생님의 명성을 듣고 몰려드는 각종 산부인과 환자들의 진료에 최선을 다하여 많은 찬사를 받으셨으며, 그 바쁜 개원 중에 저술하신 ‘여성건강과 성교육(대학서림, 1998)’은 후학들을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개원 후 맞이한 많은 여성 환자들을 보시면서, 산부인과 질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기본적인 생식건강과 교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야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는 국내 의료 환경을 개탄하시면서 이 책을 저술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산부인과의사로서 왜 미국 Johns Hopkins의대 대학원 보건학 석사가 되셨는지, 또한 미국 Chicago대 사회학교실에서 공부하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을 역임하시면서도 여러 번 이 분야의 관심과 연구를 강조하시는 열정도 가까이 뵈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올해는 당신께서 열어주신 한양의대 산부인과학교실이 꼭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보름 전 아드님의 부고 연락을 받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약 3개월 전, 늦게 진단된 췌장암으로 입원하시어 통증치료만 하셨다는데, 안타까움이 몸을 휘몰아칩니다. 최근에 못 뵈었던 까닭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해마다 의국 교수들과 함께 초대 드려 식사자리를 마련하곤 했었습니다. 

구정·추석 명절마다 댁으로 선물을 보내드리면 받으시자마자 전화하시어 쾌활한 목소리로 “또 보내셨나? 고맙습니다” 하시면서 제 안부를 물으셨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추석에는 전화가 없으셔서,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곤 지나친 것이 저의 큰 실수였습니다. 어르신이 하던 루틴을 하지 않으시면 꼭 살펴보라는 말을 들어 왔었는데,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 때 전화라도 드려봤으면 입원하신 것도 알았을 것이고 문상이 아닌 병문안이라도 몇 번 드릴 수 있었는데 하는 회한이 듭니다. 문상을 하며 사모님의 손을 맞잡았는데, 아드님으로부터 사모님 걱정만 하시다 가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채 못 다하신 일들과 사명은 저희 후학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제는 아프지 않으시지요? 속세의 잡다한 일과 근심걱정 거두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부디 편안히 잠드시기를 비옵니다.

2023년 11월, 국화꽃 향기와 함께 선생님께 바칩니다.

동탄제일병원 원장, 전 한양의대 학장 
박문일 伏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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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3-11-08 15:56:22
박원장님정도면 병ㅈ원에한양의댖마크붙히셔도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