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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지연 아동 치료 중단 사태 장기화되나?
발달지연 아동 치료 중단 사태 장기화되나?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11.0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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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도 지적됐지만 현대해상 대표 불참···부모들 “지급 거부 여전”
의료계 “청구액 많다고 지급 거부 안 돼”···“결국 문제 원인은 저수가”

발달지연 아동들에 대한 보험회사들의 보험금 지급 거부로 인한 치료 중단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환아 부모들의 거듭된 지급 요청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들이 의사의 지휘 감독이 있더라도 민간 자격사에 의한 치료에 대해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아동은 지난 2018년 7만4377명에서 지난해 13만7838명으로 4년 새 8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자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면서 또래들과 교류가 끊겨 정상적인 발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보험사들이 비급여 항목인 발달지연 치료비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이는 보험사들이 많은 의료기관에서 의료인 자격이 없는 민간 치료사들이 의료행위에 참여해 비급여 진료에 따른 보험금 청구가 남발되고 있다고 문제삼아 보험급 지급을 위한 심사 조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들은 보험사의 요구에 따라 발달지연 판정을 받은 진단서를 보험사에 제출하고, 의료자문과 치료사 자격 번호 등 세부 서류까지 요구받아 어렵게 제출하고도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어린이 보험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갖고 있는 현대해상이 지난 5월부터 발달 지연·장애 어린이의 놀이·미술·음악 등의 치료비를 대학병원에서 받은 경우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보험사도 줄줄이 치료비 지급 기준을 높여 보험회사의 치료비 지급 거절 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나게 됐다.

급기야 이 문제는 최근 종료된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지난 10월 1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감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한 여성이 “현대해상이 지난 5월부터 발달장애 치료비(실손비용) 지급을 중단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울먹이며 호소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가 약관을 살펴보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부모들은 희망의 길이 열리나 싶었지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보름 뒤인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현대해상 이성재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기대했지만 돌연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는 전날(26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현대해상의 좌담회에서 협의점이 도출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성재 대표이사는 강훈식 의원과의 좌담회에서는 “당사가 청구 건이 가장 많고, 지급 보험금도 현격하게 늘다 보니 과거에는 이슈가 아니었던 민간치료사가 이슈가 돼서 지급 심사 기준에 차이가 생겼다”며 “제도적 보완이 충분히 될 때까지는 보험금 청구 건에 대해 우선적으로 지급하면서 고객분들께 안내해 나가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 단체들은 이 말에 동조하지 못했다. 발달지연 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는 “보도를 통해 확인한 좌담회 협의 내용과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고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족연대에 따르면 현대해상 관계자는 “민간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치료에 대한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되, 국가자격증이 있는 치료사가 있는 병원을 안내할 예정이고 이후 추가 보험금 청구 시엔 치료사의 자격 등을 확인한 후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족연대는 ‘민간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치료에 대한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되’라는 단서 조항에 대해 “민간치료사의 실손 보험금에 대해 최초 1회만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과 동일하다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국가자격증이 있는 치료사가 있는 병원을 안내할 예정이다”는 부분도 ‘민간치료사가 치료하는 과목에 해당하는 국가자격 제도 자체가 없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가족연대는 “실제로 해당 언론보도를 접한 몇몇 부모들이 현대해상을 통해 지급받지 못했던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미 5월에 부지급 통보를 받았던 계약자는 제외’, ‘지급받지 못한 보험금을 최초 1회 준다는 내용이다’라는 답변을 받으며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가족연대는 “발달지연은 치료받으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질환이며 치료 골든타임은 고작 몇 년인데, 이 황금 같은 시기에 어른들의 사정, 경제의 논리로 치료중단 위기에 처한 아이들은 발달장애로 내몰리게 됐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보험사들은 발달지연 치료사는 언어치료 등 소수 국가자격 치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간자격사라서 이들에 의한 검증되지 않은 놀이치료 등을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극소수인 국가자격 치료사가 있는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의원급에서 이뤄지는 민간치료사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단지 청구액이 늘어났다고 기존에 발달장애 치료를 하던 의료기관을 포함해 모든 발달장애 치료에 대해 보험사들이 치료비 지급을 거부해선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의사의 지휘 감독하에 놀이·미술·음악 등의 민간 자격 치료사가 치료 과정에 참여해 적절한 치료가 이뤄졌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손용규 서울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서울 GF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는 “발달장애 치료를 특정 전문과목 전문의나 특별한 자격을 갖춘 의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관련 지식이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단지 청구액이 많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이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모든 발달장애 관련 의료행위를 무조건 부정한 진료로 판단하고 치료비 지급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며 “실손 청구액이 늘어나면 실손 계약 내용을 수정하거나 다른 새로운 상품을 출시해 판매해야지 기존 가입자들에게 계약 내용에도 없는 추가 서류를 요구하며 치료비 지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양동 CNA서울아동병원(전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도 “의사 지휘 감독이 이루어졌다면 비의료인도 의료행위에 참여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이미 수년 전에 나와 발달장애 치료 과정에 민간자격 치료사가 참여해 효과가 검증된 치료를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며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발달장애 치료 과정에 의사의 지휘 감독하에 놀이·미술·음악 등의 치료사가 활발하게 참여해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치료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발달장애 치료는 비급여이기 때문에 정부가 소득기준에 따라 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데 지원금을 받기 위한 대기 기간이 1년 이상으로 너무 길고 지원금도 월 20만 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양동 회장은 “현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 30만여 명에 이르는 발달장애 환아에 대한 초기 발달지연과 발달장애 치료 부담이 온전히 부모와 가족의 몫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이로 인해 가정의 행복이 깨지는 사례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며 “발달지연 검사와 중재 치료 등 관련 치료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화를 시행해 발달장애 아동들의 성장과 건강을 마땅히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극심한 저수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용규 이사는 “급여 항목 진료의 수가가 너무 낮아 아무리 진료를 많이 해도 충분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발달장애 치료처럼 비급여 항목이 많은 진료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하루빨리 비정상적인 저수가를 정상화해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 급여진료만 해도 충분한 수익을 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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