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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수가에도 외과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기고] 저수가에도 외과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 의사신문
  • 승인 2023.10.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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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라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

복잡한 수술을 마치고 수술 장갑을 벗으며 진료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직원이 순진한 얼굴로, 하지만 당황스런 말투로 이렇게 전달을 한다. "원장님, A대 병원에서···. 아니, A대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던 환자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더 이상 자기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지 말래요"

성질 급한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듣게 이야기해야지'란 말을 속으로 삼킨 채 "A대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는 거야? 왜 내게 전화를 하지?"라고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게 한번 더 설명을 했다. "그 환자가 A대 병원 B과에서 이루공(귀 주변에 발생하는 작은 구멍)으로 수술을 한 차례 했고, 농양이 생겨서 두 차례 배농술(수술)을 했는데 다시 재발했대요. 그래서 A대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이제 다시 A대 병원으로 오지 말고 원장님 병원으로 가라'고 전화번호를 줬대요. 그래서 환자가 우리 병원으로 전화를 해 언제 수술이 가능하냐고 묻길래 원장님께 보고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3차 수술까지 했으면 엉망일텐데, 그런 환자를 3차 병원인 대학병원에서 수술하지 않고 나에게 보내면 내가 대학병원 의사가 되는건가?"

나는 그 환자가 반갑지 않았다. 이유는 이렇다.

대학병원은 저수가인 수술로는 얻지 못하는 경제적 이익을 수술 전 각종 검사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취 방법도 개인 의원과는 달라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병원의 경우 흔한 CT, MRI를 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없어도 수술을 할 수 있기에 외부로 영상검사 의뢰를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전신마취나 수면마취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국소마취로 가능한 수술만 한다. 

다시 말해, 별도의 소득을 올릴만한 것은 초음파와 소염진통제 주사밖에 없다. 물론 이것마저 하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탁상에 앉아 볼펜만 굴리는 사람들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의사가 경영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의료행위들을 비양심적인 것으로 몰아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급여기준을 초과한다는 이유로 통제하려 하고, 실손보험회사는 지출이 많다고 소송을 걸고, 법원에서는 의사로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 유죄 판결까지 선고한다.

이루공(전이개낭종, 이개낭종, preauricular sinus)이라는 질환은 선천성으로 발생하고 냄새나는 분비물이 일상을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감염이 되면 극심한 고통으로 일상이 망가진다. 이 질환은 약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수술만이 해결책인데, 수술을 하더라도 숙련된 의사가 하기 전에는 완치하기가 어려운 해부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재발하거나 합병증이 발생하는, 환자와 의사 모두 골치 아픈 질환이다.

이 질환의 건강보험 규정에 의한 수술명은 '선천성 이루공 적출술'이고, 수가는 13만3372원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물론, 많은 의사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수가 13만원 중 의사의 행위료는 약 3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전신인 의료보험을 설계한 사람들이나 의료를 관리하는 사람들, 의료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 모두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단지 의사 수를 증원하면 '낙수 효과'에 의해 3만원에 수술을 해 주는 의사가 늘어날 것으로만 보고 있다.

고통받는 환자를 위한 의사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 성적이 좋아서 의사가 되었더라도, 선배 의사들과 스승들을 통해 의사가 어떤 직역인지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수가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이나 수술실, 중환자실이 유지되고 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이루공 농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빨리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연락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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