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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과·외과 전용 의대 만들라?” 각종 황당 주장으로 여론 호도
“소청과·외과 전용 의대 만들라?” 각종 황당 주장으로 여론 호도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10.17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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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증원에 여론 반색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잘못된 단순 정보부터 바로 잡아야”
“빅5 대기 환자 많다”, “응급환자 많은데 진료할 의사 없다” 등 잘못된 언론 기사도 많아

정부가 의과대학의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이나 SNS 등에선 각종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치르는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여당과 야당 모두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고, 보수와 진보를 떠나 언론과 여론의 분위기도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적극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어 오랫동안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의료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의 뜻을 나타낸 것은 최근 일명 ‘구급차 뺑뺑이’ 사건이나 ‘소아과 오픈런’ 등의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외과와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 문제가 심각해 앞으로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면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도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러한 ‘낙수효과’로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공백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우리나라 의사들의 숫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에 대한 처우나 보상이 다른 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전공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앞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아무나 의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성적 저수가 개선이나 의료전달체계 정비 등 불합리한 제도의 정비 없이 ‘MZ 세대’ 젊은 의사들이 처우나 보상이 열악한 필수의료 분야에 대거 지원하기는 힘들 것이고, 대신 피부 미용 분야 의사들이나 아예 전공의 수련을 하지 않은 일반의만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낙수효과’로 인해 필수의료 의사 증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현상황에서 의료인들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것은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한다는 일반인들로부터 의학 교육을 비롯한 보건의료제도에 대해 부정확하고 황당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대 정원 확대 관련 인터넷 뉴스 댓글이나 SNS 등에는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의사가 없으면 의대에 입학할 때부터 소아청소년과나 외과로 과를 정해놓고 뽑고 다른 전공은 하지 못하게 하면 될 것 아닌가”라는 등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또 “지방에 의사가 부족하다면 의사의 연고지나 출신 의대가 있는 지역에서만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글도 보인다.

치과대학처럼 의과대학도 외과나 소아청소년과, 내과, 산부인과 등의 각 전공 과목을 정해놓고 입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정상적인 의학 교육이 이뤄질 수 없고 전 세계적으로 의학 교육 시스템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국가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 관계자 A씨는 “의대 교육이 마치 입학할 때부터 특정 진료 과목을 정해놓고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반인들도 많은 것 같다. 인터넷 댓글이나 SNS 등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는 내용의 글들을 보면 너무나 황당한 내용이 많아 이를 제대로 따져 보면 직업 선택의 자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 등 위헌적 요소가 매우 커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SNS나 인터넷 댓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기사 내용도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당장 그에 필요한 교원 확보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료계의 우려에 대응해선 현재 의과대학과 로스쿨을 비교해 의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가 1.6명으로 로스쿨의 4분의 1이라며 ‘개인과외’ 수준으로 의대의 교원이 너무 많다는 언론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이는 모 여당 국회의원의 보도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방학도 없이 진료를 주로 하며 학생 강의는 거의 하지 않으며 각종 실습과 장비가 필요한 의대 임상 교수들과, 이들과 관계없이 연구와 강의만 하는 로스쿨 교수들의 1인당 학생 수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외에도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일명 ‘빅5’ 병원의 대기 환자가 너무 많은 것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기사도 보도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빅5’ 병원이나 응급실 등의 대기 환자들 대부분은 애초에 ‘빅5’ 병원이나 응급실을 갈 필요가 없는 환자들이다. 즉, 우리나라 특유의 ‘환자 쏠림’이나 ‘응급실 과밀화’가 그 원인으로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진입 장벽이 낮아 통제가 되지 않는 우리나라 대형 병원과 응급실의 문턱을 높여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인데,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무조건 의사 수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사실 서울의 대형병원들에서 진료를 받겠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대학병원에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마찬가지로 응급실도 애초에 응급실에 방문할 필요가 없는 경증 환자들이 자신이 응급환자라고 ‘주장’하며 응급진료를 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특유의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발생해서 진짜 응급환자들이 진료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일반인들이 의료 제도나 의학 교육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잘못된 정보를 접하지 않도록 아주 기초적인 정보에 대해서라도 홍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계 관계자 B씨는 “현재 여론을 살펴보면 의료나 의학교육제도에 대한 정말 기본적인 지식도 없어 상식을 벗어난 황당한 주장들도 많이 나오고 있어 잘못된 여론 형성을 부추기며 독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의료전달체계 등 의료와 의학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라도 홍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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