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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토사구팽식 감염병 행정, 계속되면 ‘필수의료 강화’ 허사된다
[기자수첩]토사구팽식 감염병 행정, 계속되면 ‘필수의료 강화’ 허사된다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10.1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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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 12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이뤄졌다. 많은 의원들이 수차례 거듭 지적한 사항 중 하나는 코로나19 치료 전담기관으로 지정되어 헌신했던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회복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지난 12일 참고인으로 출석한 백남순 경기의료원 포천병원장은 “회복기 손실보상 기간에 대해서는 팬데믹 당시에도 전국 모든 공공병원장들이 ‘절대 부족하다’고 울다시피 호소했다”며 “2년 반을 동원했으면 적어도 그만큼의 기간은 회복할 여유를 줘야했다”고 비판했다.

경기의료원 포천병원은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약 2년간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코로나 환자 치료에 전념했다. 그러나 지정 해제 이후 돌아온 것은 적정한 보상이 아니라 반토막이 난 환자 수와 적자 뿐이었다. 전담병원 해제 이후 병상 가동률은 40%를 겨우 넘기고 있으며, 하루 700명에 달했던 외래환자 수는 이제 4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2월 회복기 지원이 종료되자 운영 적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매월 평균 10억원의 어마어마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기도청에서 매달 8억원씩 재정을 지원해왔기 때문에 임금체불만은 피하고 있지만 지자체 재정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다. 당장 다음달인 11월, 또는 12월부터 임금체불이 시작될 것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비슷한 일이 얼마 전 개원가에서도 벌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부당청구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사회 등 의료계 반발이 이어지자 공단은 전산점검과 자율시정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나 ‘부당청구를 근절’하겠다며 ‘전수 조사’ 카드를 꺼냈던 기저 의식에는 달라진 점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정부 지침에 따른 현장 혼란으로 청구에 오류가 있었을 것은 전혀 감안하지 않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토사구팽(兔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이 마무리되면서 정부가 공공, 민간 할 것 없이 의료인들을 토사구팽하고 있음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다음 팬데믹에도 공공병원은 정부 동원에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안에 의사들이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이미 얼마 없는 인력을 또 다시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지친 의료인들이 공공의료를 떠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을 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공공병원 자체가 전국에 몇 곳이나 남아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민간병의원에서는 다음 팬데믹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까? 서울시의사회가 내놓은 ‘코로나19 서울형 재택치료’와 같은 민간 주도의 팬데믹 대응 모델이 또 나올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급할 때는 수가로 유인하고, 상황이 잠잠해지면 전수조사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이번 태도를 보고 말이다.

9월 기준 병원급 이상 공공의료기관 222개 중 20%에 달하는 44개소, 지방의료원 중 66%에 달하는 23%가 의사를 구하지 못해 휴진하는 과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회복기 손실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더 가팔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원들의 지적에 “전담병원 회복기 손실보상 기간은 전 정권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변명하다 뒤늦게서야 “각 병원의 회복률을 점검해서 지원 기간 연장 등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팬데믹 주기를 5년으로 예측한다. 혹은 그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고도 본다. 감염병 사태는 지금 정부에서라도 얼마든지 다시 터질 수 있는 일이다. 정부의 토사구팽식 행정이 여러번의 팬데믹을 통해 반복된다면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 지역완결적 의료체계를 완성하겠다며 내놓는 대책들이 모두 허사가 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누구를 탓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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