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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업체를 대하는 의사협회의 태도
결혼정보업체를 대하는 의사협회의 태도
  • 전성훈 변호사(의협 법제이사)
  • 승인 2023.10.11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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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6)

사람은 실패에서 깨닫는다. 그리고 깨달음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수많은 조언을 남겼다.
 
“결혼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토마스 가타커).”  “나는 결혼식 후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신랑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토머스 제퍼슨).”  “나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방해하는 유일한 존재는 내 남편이다(안드라 더글라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인의 딸 결혼식에서 이런 축사를 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필자는 위기에 있는 부부들을 직업상 많이 접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좋을 때’와 ‘별로 좋지 않을 때’가 반복될 것이지만 행운을 빈다는, 유명 작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더 와닿는다. 지금 아무리 불같이 싸우고 있는 부부라 하더라도, 예전에 사랑하고 행복했을 때가 없었을 수는 없다. 단지 ‘별로 좋지 않을 때’가 너무 길게 지속된 것뿐이다. ‘아주 좋을 때’의 기억을 다 갉아먹을 때까지 말이다.
 
‘결혼만큼 본질적으로 자신의 행복이 걸려있는 것은 없다’고 괴테가 갈파한 것처럼, 결혼은 남녀 모두에게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결정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매’라는 것이 흔히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중매혼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원래 ‘자유연애혼’이었다. 1700년 전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는 남자와 여자가 밤늦도록 함께 모여 노래하고 논다’, ‘고구려에서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면 이뤄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상사병으로 불귀신이 되어 버린 신라의 ‘심화요탑’ 설화나, 공주를 모함하는(?) 노래를 퍼뜨려 결국 선화공주와의 결혼에 성공한 백제의 ‘서동’ 설화를 보라.
 
만두 사러 갔다가 아랍사람과 눈이 맞은 여성의 심경을 담은 고려가요 ‘쌍화점’은 또 어떤가. 이렇듯 고려 후기까지 수천 년 간 우리 민족은 특별한 예법을 앞세우지 않고 자유연애혼을 당연하게 여겼다.
 
고려 중기부터 점차 유교 이념이 강화되면서 지배층은 ‘오랑캐 풍습’인 자유연애혼을 금지하려고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고려는 몽골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고, 몽골은 고려에 많은 공녀를 계속 요구했는데, 그러자 딸자식이 공녀로 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0세 전후의 아이들을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이 생겨났다. 이후 조혼 풍습의 확산과 함께 자유연애혼이 점차 사라지면서, 부모가 결혼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중매혼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후 유교 이념을 더 강조하는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건국하자, 자유연애혼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중매인은 일반적으로 두 집안이나 한쪽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나이 지긋한 친척이나 지인이 담당했다. 그러나 두 집안의 장래가 걸린 중대한 절차를 ‘비전문가’가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게다가 집안의 사회적 평판과 체면이 중요하던 시기에, 결혼을 진행하다가 어그러졌을 때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툼이 일곤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를 직업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이를 중파 또는 매파라고 불렀다.
 
결혼의 실패 확률을 낮추고자 하는 욕구가 결혼 당사자와 그 부모에게 워낙 컸기에, 결혼 상대와 그 집안에 대한 ‘사전 정보 확인’의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중매인이라는 직업은 500년 이상 유지되었다. 그리고 남녀평등과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연애혼이 보편화된 현대에도, 중매인은 같은 수요에 바탕하여 자본화.규모화를 통해 ‘결혼정보업체’로 살아남았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모 결혼정보업체를 업무방해죄, 사기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 업체는 의협과 아무런 의사 교환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의협의 ‘명칭’과 ‘로고’를 무단사용하고 ‘대한민국 의사협회와 함께하는’이라는 표현을 무단기재하여, 마치 의협이 소속 회원인 의사들을 이 업체가 주최하는 유료 남녀 미팅 파티에 추천하거나 소개한 것처럼 보이도록 광고했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회원들의 문의와 항의를 통해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인지한 후, 의협이 내부 검토 및 결정을 거쳐 고소장을 준비 및 제출하는데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영리 목적을 위해 전문가단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악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으로 엄중 대응하겠다는 원칙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협은 형사 고소와는 별개로 추후 민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처럼 의협의 대외적 위상 보호는 ‘24시간 내’에 대처했고, 대내적으로 회원들의 수많은 민원은 의협 회원권익위원회가 대부분 ‘24시간 내’에 해결하고 있다. 어느 단체와 비교해 보더라도 실로 경이적인 대응 및 처리 속도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부, 국회, 타 단체들에 대해 대응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안들은 이처럼 조속히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가 복잡하고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의료 제도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안에서 이해관계자가 국민들이기 때문에 정부, 국회 등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의협은 대부분의 결혼정보업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러나 문제 있는 일부 결혼정보업체에 대해서는 매우 신속하게 엄정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로지 의협에 대한 국민의 신뢰 보호, 궁극적으로 이를 통한 회원 권익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의료계를 둘러싼 뉴스들을 보면서 회원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의협이 이처럼 모든 사안에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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