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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현의 만파식적(萬波息笛) 2] 언제든지 연명의료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어서···
[김강현의 만파식적(萬波息笛) 2] 언제든지 연명의료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어서···
  • 의사신문
  • 승인 2023.10.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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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현 전 서울시의사회 정책·법제·대외협력이사

‘춘추좌씨전’의 결초보은(結草報恩) 이란 옛 이야기를 소개한다.

진(晉)나라 대신이 늙어 병이 들자 아들에게 자신의 후처를 개가시키라고 유언하였다. 이후 병이 깊어져 정신이 혼미하자, 이번에는 순장시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아들은 서로 다른 유언으로 고민하다가 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했을 때 남긴 유언대로 아버지의 후처 즉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주었다. 훗날 서모의 아버지가 그의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하도록 도와준 것을 감사히 여겨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풀을 엮어, 적장을 그 대신의 아들이 사로잡게 도왔다는 이야기이다.

이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임종상태가 되면 의사능력이 남아있어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어, 자식으로서는 유언을 지킬 때 고민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임종시기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서약한 사람들이 200만 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9월23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추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등록 건수는 194만1231건으로, 여성이 131만9812명으로 68%를 차지하고, 남성이 62만1419명이라고 밝혔다. 이 연명의료 결정 제도는 지난 2018년 2월4일 처음 시행되었는데, 즉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다음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을 파악하는 절차도(참고: 표)이다.

이 법에 따라서 환자는 의사능력이 있을 때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가 스스로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하건 하지 않건 간에, 의식능력이 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담당의사는 환자에게 다시 확인하여야 한다는 점에 논란이 있을 수가 있다.

제12조(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등록 등) ⑥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이 경우 등록기관의 장은 지체 없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변경하거나 등록을 말소하여야 한다.

따라서 담당 의사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의사능력이 있는 한 그 의사를  재확인을 하고 지체 없이 변경하거나 등록을 말소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어, 애초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의 법적 안정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종상태를 판단하기 위하여 의사 2인이 확인하여야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의학적으로 임종상태 여부를 의사 2인이 제대로 판단하였는지에 관한 법적 판단을 다툴 여지가 명백히 있기에, 의사는 만에 하나라도 소송당할 우려에 대한 부담은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담당의사와 제3의 해당전문의의 판단이 같지 않을 수가 있는데 이는  의학적인 판단의 기준과 여러 가지의 측면을 고려할 입장이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 바 보라매병원 사건이 1997년에 발생했다. 환자는 부두외상으로 응급개두술과 혈종제거술을 하였지만 뇌부종 등에 의한 자발 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중증 상태였다. 환자의 부인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담당의사 등에게 자의 퇴원을 요구했다. 환자가 곧 사망할 만큼 중증이어서 극력 만류를 하였으나, 의사들은 지속적 요구에 ‘퇴원 후 환자의 사망에 대해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라는 귀가서약서를 받고서, 환자를 퇴원시켰고, 환자의 집에서 인공호흡보조장치와 기관삽관을 제거하자 환자는 곧 사망한 사건이다. 이 변사사건(變死事件)은 경찰의 조사를 거쳐 고발당한 담당 의사들은 대법원의 ‘살인방조죄’ 판결로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던 병원들은 퇴원요구를 거부하게 되었고 존엄사 논란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8년 2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 사건도 보호자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였지만 보라매병원 사건의 살인방조죄 판결에 따른 법적 부담(法的 負擔)으로 병원측이 거부하자, 보호자는 소송을 하였다.

마침내 대법원은 2009년 5월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라고 최초로 ‘존엄사’의 개념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이로서 안락사 논의가 활발히 시작되었고, 드디어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법’)’이 제정되어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즉 연명의료법상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Extracorporeal Life Support),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으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이다.

‘임종과정’은 ① 회생가능성이 없고, ②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③ 사망에 임박하다는 것인데, 이때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의사가 판단하여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절차대로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면, 앞의 사건들처럼 의사의  판단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보호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우려는 늘 있다.

아울러 ‘말기환자’는 즉 ① ‘근원적’ 회복가능성이 없고 ②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③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로, 즉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아닌데, 실질적으로 예상사망시기가 임박과 수개월이란 차이 외에는 명백히 구분할 수가 없어, 담당의사도 아닌 제3의 해당분야(該當分野)의 전문의는 공연히 법적 다툼에 휘말릴 우려에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명의료법상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 하더라도 통증완화와 영양, 물,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등 처방과 모니터링, 중심정맥관 삽입과 관리, 영양과 물 공급을 위한 비위관 관리 그리고 전해질, 혈액검사 등을 규칙적으로 시행하여 정상범위를 벗어나게 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하며, 산소포화도에 따라, 산소량 또는 산소투여경로를 변경하여야 하기에 실질적으로는 연명의료에 못 지 않는 의료행위를 하여야 한다. 만일

이런 행위를 게을리 하였다며 소송을 당하거나, 이런 처방을 하지 않으면 살인죄(殺人罪)로 기소될 우려가 있다고 보여 진다.

특히 요양병원은 1500여 개가 개설되어 있지만 전국적으로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겨우 수십 곳에만 설치되어 있고 공용 의료기관 위원회를 이용하는 것도 유지비용이나 의사인력 부족 등 사정상  쉽지는 않은 실태이다.

실제로 의료현장에서 적법하게 연명의료중단을 하였으나 가족에 의하여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우려대로 실제로 일어났었다. 

2021년 5월12일 어떤 대학병원 의사가 환자를 임종과정으로 판단하고, 그의 가족에게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하고 이를 이행했으나,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실이 없다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췌장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의식상태가 잠시 회복되는 등 호전 양상이 나타났음에도 의료진이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으로 사망하였다며 가족이 청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에서 “대학병원에서 2018년 12월 3일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 급성신부전의 진단을 받고 인공호흡기 착용, 항생제 투약, 혈액투석 등의 치료를 시행해 2018년 12월19일까지 의식상태가 회복되는 등 호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하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해당하지 않고, 급성신부전에 대한 치료 경과 및 예후 등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을 위해 신장내과의 협진 내지 진단이 필요했음에도 감염내과 담당의사는 말기 암환자로서 다발성 장기부전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해 진료상의 주의의무를 위반했고, 혈액투석이 중단되는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다”고 가족은 주장했다.

그러나 담당 재판부는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의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 등을 종합해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이 적법했는지를 세세하게 살폈고 다음과 같이 보았다.

△환자가 2018년 12월 10일까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항생제 투여로 폐렴 증상이 호전양상을 보였지만, 여전히 의식이 반혼수 상태이고, 지속적인 혈액투석에도 급성신부전 및 대사성산증이 호전되지 않았고 △환자는 2018년 12월 14일경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한 단계 호전됐으나, 그 때까지 환자의 발열, 수축기 혈압 등에 비춰 증상 완화와 악화가 반복되는 등 활력징후 및 검사소견이 불안정했고 △환자는 2018년 12월 18일경 혈색소(Hb) 수치가 정상범위에 못 미치는 7.7㎎/dl까지 감소하고 혈변 및 혈뇨 증상이 나타나며, 임종 직전 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안구 편위 증상도 확인됐고, 이후 시행된 내시경 검사에서 췌장암의 위장 및 직장 부위 전이가 발견됐고, 그로 인해 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봤다.

또 감염내과 담당의사와 전문의는 2018년 12월19일 연명의료결정법 제16조에 따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서’를 작성했고, 환자의 자녀로부터 환자가 충분한 기간 동안 연명의료중단 등에 관한 의사를 일관해 표시했다는 내용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대한 환자의사 확인서’를 작성 받아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행했다고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당시 회생 가능성이 없는 전이성 췌장암의 상태에 있고,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는 급성신부전, 대사성산증 및 인공호흡기 의존 상태였으며, 췌장암의 위장 침범 및 직장암에 의한 출혈 등으로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었다”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기준에 부합했다”고 판단하고, 가족의 주장 즉 신장내과의 판단의 필요성, 지속적 혈액투석이 예후를 변화시킬 가능성에 대하여 “회복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이고, 임종과정 여부를 판단하는 데 신장내과의 판단이 필수적으로 동반됐어야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환자가 입원한 후 치료를 통해 폐렴 증상이나 의식상태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그동안에도 환자의 활력징후나 검사소견이 불안정했고, 진료기록 감정의도 이런 수일이나 수주일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에서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며 “진료과정에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병원 측의  법무법인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과정에서의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쳤다면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법원이 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판결”이라고 하면서, “이 사건의 경우 환자가 증상이 다소 완화되는 소견을 보이더라도 전반적으로 활력징후나 검사소견이 불안정했다면,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이행을 위한 요건이 충족됨을 인정했다”며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서 참고할만하다”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환자의 신체 상태와 관련된 증상, 활력징후 또는 검사소견이 호전되고 안정적이라는 가족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재판부의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엄중한 법적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즉 이런 유형의 소송이 또 다시 일어날 우려는 충분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살펴보면, 말기 및 임종과정에서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없는 환자 경우에는 해당분야 전문의(제3자)의 의학적 판단이 중요하고, 병원윤리위원회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이 경우에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기 전에 말기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지에 대하여 해당분야 전문의의 판단을 구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말기 및 임종과정에서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환자가족의 진술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경우는 담당의사(擔當醫師)만으로 말기 및 임종과정을 진단 및 판단해 연명의료중단결정을 충분히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환자의 의사가 확인되어도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의 동의(同意)를 구하도록 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自己決定權 侵害)라고 볼 수 밖에 없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자는 즉 자기결정권을 이미 침해를 이유로 이에 대하여 헌법소원(憲法訴願)을 제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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