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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 처벌에 ‘마약류 성지’ 난립···서울시의사회 “자정 권한 촉구”
솜방망이 처벌에 ‘마약류 성지’ 난립···서울시의사회 “자정 권한 촉구”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10.0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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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마약류취급업무정지 처분’ 하루 3만원 과징금으로 갈음
한 의료기관에서 1명에게 마약류 18만개 주기도 “재판매 등 우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강력 처벌 통해 중독자 양산 경로 차단해야”
지난달 경찰에 송치되고 있는 '롤스로이스남'. (사진=뉴스1) 

최근 의료기관을 통해 마약류 투약을 일삼던 중독자들의 범죄가 연발하면서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이 불법 유통 마약만큼이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선량한 병의원들까지 ‘마약 공급책’처럼 취급받을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는 부재한 상태여서, 의료계는 자정 작용을 위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명 ‘롤스로이스남’은 지난 8월 약에 취한 채 운전을 하다 보행자를 치어 뇌사에 이르게 했고, ‘람보르기니남’은 지난달 주차 시비가 붙자 흉기로 행인을 위협해 체포됐다. 이들은 모두 마약 검사에서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검출됐는데, 그 이유로 ‘피부과 시술을 위한 수면마취’를 주장했다. 롤스로이스남은 사고 직후 해당 의원에 들러 CCTV 영상 등 증거 인멸을 시도한 의혹도 받고 있다.

실제로 일부 의료기관의 마약류 처방량은 도를 넘은 수준이다. 과다하게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가 재판매를 통해 불법 유통됐을 가능성과, 마약류 과다 복용이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 등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백종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30대 A씨는 병원 한 곳에서 245차례에 걸쳐 18만2000개의 마약류를, 다른 60대 B씨는 병원 한 곳에서 86차례에 걸쳐 15만9634개의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약 500정. 1년에 18만2000정을 처방받아 직접 복용했다면 이만큼의 약을 하루에 세 번 먹어야 한다. 

약을 하루 세 번, 일 년 내내 먹는다고 하더라도 총 처방량은 약 1100개에 그친다. 18만2000개의 약을 직접 복약했다면 한번에 약 500개를 털어넣어야 한다. 한 눈에 봐도 비상식적인 처방량이다.

또 대구 달서구의 한 의원에서는 지난해 3만1000명의 환자에게 2216만개의 마약류를 처방했다.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병원은 다이어트 전문병원으로 마약류인 펜타민 등을 주로 처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타민은 마약성 식욕억제제로 다량 복용하거나 장기 복용하면 환청, 환각, 망상, 중독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낸다.

하지만 마약류 처방을 일삼는 의료기관이 받는 행정처분은 수위가 낮은 편이다. 현행법상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 처분’은 하루 3만원의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의 한 의원은 지난해 4월 마약류 취급 업무정지 13개월을 통보받았다. 마약류 취급 내용을 미보고하고, 업무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취급한 혐의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1일당 3만원씩, 390일치 과징금 1170만원을 내고 진료를 이어갔다. 이미 마약류 중독자들 사이에서 ‘펜타닐 성지’로 불리던 곳이지만 처분까지 1년여의 기간이 소요돼 신속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의료계는 자정을 위해 전문가단체에 어느정도 제지 권한이나 수단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의료기관을 통해 마약류를 구하는 중독자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나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에서 마약류 과다 처방 기관을 파악하더라도 직접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넣고 처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길어 그동안 해당 기관을 제지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며 “전문가단체에 자정 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의료용 마약류 남용에서 마약 중독까지 이어지는 중독자 양산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는 의료기관만의 책임이 아니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원인”이라며 “재판매 등 마약류 약품을 처방 받아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적절한 규제 수단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며 “의사단체 차원에서 의료용 마약류 처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만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도 “아주 일부에 불과한 비정상적인 마약 성지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며 “향후 의사회는 마약류 오남용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대국민 홍보 등을 통해 의료기관과 마약류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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