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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헬스케어,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돼”
“디지털헬스케어,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9.20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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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강기윤·고영인 의원, 20일 디지털헬스케어 토론회 개최
박민수 차관 “기술패권 못 잡으면 과거 국권 뺏긴 상태 될 것”
의료계 “의료인의 정보생산자 권리 존중 등 활용 환경 조성해야”

윤석열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지목하면서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속도감 있게 산업을 육성해 국제 기술패권을 쥐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며 규제 샌드박스를 추진하고자 하지만 의료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산업 발전이 국민 건강과 생명 보호라는 가치에 앞설 수 없다는 전제 때문이다.

이에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국민의힘), 고영인(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법안 쟁점과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디지털헬스케어법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인사말을 통해 “세계는 기술 패권 전쟁 중이다.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20세기 초 국권을 빼앗긴 상태가 될 것”이라며 “기술 패권 주도국이 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기윤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디지털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디지털헬스케어의 개념을 정립하고, 의료법, 약사법, 생명윤리법, 의료기기법 등 보건의료 분야 유관 법률과의 관계를 규정한다. 또 복지부가 디지털헬스케어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 산하에 ‘디지털헬스케어 정책심의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한다. 아울러 개인정보 보호 강화, 보건의료 분야 빅데이터 연구 활성화, 개인 의료데이터 본인 전송요구권,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신설 등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다른 법률과의 쟁점 중 하나는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다른 법률을 제개정 하는 경우 디지털헬스케어법의 목적에 맞도록 해야 한다’라는 조항이다.

이 조항에 대해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 이원복 교수는 “기존 법령의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적인 법령에서 기존 법령에 대한 특칙을 담고 있다. 미국의 하이테크법이나 21세기 치료법은 기존의 법령을 개정하는 내용을 하나의 입법안에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와는 경우가 다르다”라며 “오히려 현재 발의된 디지털헬스케어법이 너무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떄문에 오히려 산만하고 기존 법령과의 조화로운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민들은 디지털헬스케어 증진을 통해 시공간과 의료기관 간 장벽이 없는 통합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데이터 오남용에 대한 불안감을 지우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해서는 활용 기업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고, 보험 가입 거절이나 데이터 오남용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한 사후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며 “데이터 주체의 데이터 파기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기업들은 데이터 이중복사를 막기 위해 메디블록 등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사 결과, 개인정보 블라인드 처리, 블록체인 기술 등에 대해 교육을 들은 소비자의 경우 개인식별방지, 데이터 보안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며 “의료데이터 활용에 있어서 소비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관련 법제화 시 디지털헬스 문해력이 낮은 계층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을 빠르게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높은 보건의료산업 규제벽을 다소 허물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제시됐다.

KAIST 정명진 교수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승인된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샌드박스 과제 비율은 전체 승인 과제의 22.4%로 낮은 수준이다. 특례 승인 과정에서 부처간 협의와 이관에 상당기간이 소요되고,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곤란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생명 관련 규제의 특수성, 바이오헬스 산업 생태계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면 규제 샌드박스에 있어 복지부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육성이 국민 건강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충분히 신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정보 생산자인 의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디지털헬스케어를 진료에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는 “의료데이터 생산에 있어 의료기관과 의사의 기여도는 매우 높다”며 “표준화 형식에 따라 기록 양식을 바꾸고 요건에 부합하는 다양한 의료정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보다 각별한 노력, 추가적 시간, 비용이 소요된다. 의료데이터의 생산자적 권리에 대한 보호 없이 양질의 의료데이터 생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헀다.

그러면서 “디지털헬스케어를 단순히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보건의료산업은 재정과 지불체계 복잡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수요공급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며 “규제 샌드박스가 산업계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했을 때 생기는 사회적 파장을 감당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형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재 디지털헬스케어 기술들은 대부분 대면 진료를 보완하거나 부가적으로 기능을 확장하는 단계”라면서 “의사들이 기술 적용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면 산업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보건의료 디지털 혁신을 바르게 촉진하고자 한다면 의료인들의 권리를 정당하게 보호해야 하며, 주체적으로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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