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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대법원 환자의 민사 입증책임 완화 판결 심각히 인지 중
의료계, 대법원 환자의 민사 입증책임 완화 판결 심각히 인지 중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09.18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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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학적으로 높은 수준 증명 불필요···'개연성'으로 충분해
이세라 외과醫 회장 "침습행위 소극화로 필수의료 궁지 몰릴 것"
한진 변호사 "의료기관 부담 늘 것이므로 실무상 차이 지켜봐야"

최근 대법원이 환자 측인 원고의 민사소송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의료계가 해당 판결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지난달 31일 치료를 받다가 숨진 A씨의 유족이 B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5년 12월 B의료재단의 피고 병원에 입원했다. 피고 병원 마취과 전문의 C씨는 A씨에게 수전신마취제를 투여한 뒤 자리를 비웠다. A씨는 이후 혈압이 떨어졌고,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돌아온 C씨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A씨는 이대목동병원으로 전원됐으나 도착 당시 심정지 상태였고 그 무렵 사망했다.

그동안 진료상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손해가 발생하는 것 외에 주의의무 위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했다. 또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가 기존 질병 등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의 증명도 원고의 몫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환자 측이 의료진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러한 책임을 완화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현대의학지식 자체의 불완전성 등 때문에 진료상 과실과 환자 측에서 발생한 손해(기존에 없던 건강상 결함 또는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통상적으로 회복가능한 질병 등에서 회복하지 못하게 된 경우 등)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자 측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에서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환자 측이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한편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행위를 한 측에서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즉, 의학적 원리에 부합한 개연성을 지닌 의료사고나 합병증이 발생했다면 수술이나 치료를 한 의사는 소를 제기한 환자에게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만 의료사고나 합병증이 의료행위로 인한 과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증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침습적인 의료행위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어 "현재 필수의료분야가 바로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많이 하는 외과계 의사들인데 외과의사들에게 소송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갖게할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필수의료분야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판결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진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는 “이번 판결로 민사상 입증책임 자체가 원고에서 피고로 전환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그동안 기준이 다소 애매한 판례들(일반인의 상식 등)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결과 환자측 입증책임이 완화되어 의료기관으로서는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울 것으로 예측된다”고 평가했다.

한 법제이사는 “다만 위 판결 이전에도 그동안 환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보완하는 판례의 법리들이 있어서, 실무적으로 얼마나 이전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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