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6:26 (일)
고위험산모 늘면서 소송 부담 높아지는데···복지부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불가”
고위험산모 늘면서 소송 부담 높아지는데···복지부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불가”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9.15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재형·신현영 의원, 15일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 현실’ 토론회 개최
임금 상승·기대수명 연장으로 2030년대 의료소송 배상금액 ‘20억원대’ 예상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의사 개인에게 무거운 책임 전가하는 판결 안타까워”

최근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신생아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12억원 배상 판결을 받아 의료계가 큰 충격에 빠진 바 있다. 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사건,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과실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전문의 사례 등등 산과뿐만 아니라 의사 개인에게 가혹한 법적 책임이 계속되면서 필수의료 기피 분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최근 외과계와의 간담회에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직역 간 형평성 문제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발의한 ‘불가항력 소아 의료사고 국가책임법’도 소청과 위기가 의료소송 때문은 아니라는 이유로 제정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재형, 신현영 의원은 15일 ‘분만 인프라 붕괴와 의료 소송의 현실’ 토론회를 개최하고 개선 방향을 논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분만실이 없는 지역도 점점 늘어나 산모들이 원정 출산을 떠나는 현실”이라며 “이러한 열악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도 무거운 책임을 전가하는 판결이 계속되면서 젊은 의사들의 산부인과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진료, 연구, 교육에 매진하시는 산부인과 선생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오늘 토론회가 대한민국 산부인과에 희망의 싹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소송에 대한 부담은 전공의, 전문의 할 것 없이 명실공히 분만 기피 원인 1순위로 꼽힌다. 게다가 최근 고위험 산모, 다태아, 조산이 증가해 분만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분만 결과가 좋지 않을 확률 또한 상승해 의료소송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설현주 경희의대 산부인과 교수에 따르면 2020년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 산과 전임의, 산과 교수 1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이유로 ‘의료사고 걱정’을 꼽은 응답자가 79%에 달했다.

최근 들어 의료소송 배상 금액이 10억대로 상승한 것은 최저임금 상승과 기대 수명 연장으로 인해 일실수입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실수입이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원고 측이 남은 노동 가능 기간 동안 벌 수 있는 수입을 산정한 것으로, 의료소송 배상금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일실수입은 산식이다. 판사가 배상금액을 높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의사가 특별히 큰 잘못을 해서도 아니다. 대입하면 산출되는 숫자”라며 “2030년이 되면 최저임금과 기대 수명 영향으로 배상금액이 20억대까지 나올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민사 소송의 목적은 손해에 대한 공통타당한 분배다. 누가 봐도 배상금액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라며 “그렇다면 배상 금액을 결정할 때 낮은 분만수가를 참작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사회적 연대 책임 차원으로 분만사고 배상금액을 책임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강동훈 광주고등법원 제주재판부 판사도 “일을 하다 실수했다고 해서 이렇게 큰 책임을 지는 직업은 의사 뿐”이라며 “의료소송은 다른 불법 사건과 다르게 의사가 환자나 임산부를 돕기 위해서 발생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참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제조합, 책임보험 등 사회적 분담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출산 시기가 늦어지면서 증가하고 있는 고위험 산모에 대한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위험 산모를 볼 전문 인력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인프라 또한 열악하다는 주장이다.

배진곤 계명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산과, 특히 고위험 분만 관련 수가 현실화가 시급하다”라며 “고위험 산모를 24시간 진료할 수 있으려면 최소 5명 이상의 전임교수가 필요한데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는 수가 인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고를 투입해 전공의, 교수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수영 성균관의대 산부인과 교수도 “분만 관련 전문인력 수급에 적신호가 켜졌다.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2004년 259명에서 2023년 102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고, 95개 수련병원의 산과 교수는 125명으로 병원당 1.3명에 불과하다”며 “교수 뿐만 아니라 조교수 감소세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어 향후 고위험 산모 전문 진료 및 교육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종윤 강원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센터는 예산과 인력 문제 뿐만이 아니라 권역 내 연계 체계 구축이 어렵고, 응급환자 전원의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며 “센터 예산 증액,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 분만 참여 의료진에 대한 직접 지원 강화, 2015년 도입된 노후 장비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신욱수 복지부 공공의료과장은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통해 의료사고 예방 등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을 위해 ‘안전정책수가(분만수가 100%)’를 신설해 추가적으로 지급하고 있다”며 “고위험 분만 시설 및 인력 기준을 갖춘 대학병원에 대해서는 집중치료실, 고위험 수술 보상을 강화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만 취약지에 대해서도 ‘지역수가(분만수가 100%)’를 추가적으로 산정하고 있고, 지역별 차등수가의 효과성 평가를 거쳐 응급 및 중증소아 진료 등 타 분야에 대해서도 차등수가를 확대 적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고위험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가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