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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식 원장 "포퓰리즘 극복 없이는 필수의료 붕괴 못 막는다"
우봉식 원장 "포퓰리즘 극복 없이는 필수의료 붕괴 못 막는다"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09.12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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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정·사법폭력에 전문가 멸시 받고 표 구걸 정책 남발 돼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해 의료진 법적 안정성 지켜야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정치의 '포퓰리즘'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 주최로 열린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대책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운데,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이 자신의 주제발표에서 “대한민국 의료는 정치폭력, 행정폭력, 사법폭력의 삼중고를 겪고 있다”라며 의료에 대한 사회관점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 원장이 정의한 정치폭력은 위정자들의 포퓰리즘 정책이다. 전문가들의 합리적 의견을 말살하고 국민의 표를 의식해 남발하는 선심성 정책들을 포괄해 지칭한다. 특히 문재인 정권 당시 보장성 강화라는 미명 하에 시행한 문재인 케어를 대표적인 포퓰리즘 사례로 지적했다. 행정폭력은 심평의학의 획일적 기준에 의해 희생된 의료의 질과 창의력 저하를 지목했다. 사법폭력은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마저 의사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현상을 언급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한일간 평균 의사 100명당 기소건을 보면 우리나라는 13만 536명 중 336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기소돼 활동의사 수 대비 평균 기소건수가 0.258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일본 의사 41만 462명 중 검찰에 기소된 의사 수가 4.2건으로 의사 100명 당 기소건수는 0.001건에 불과해 의사 1인당 일본의 기소건수 대비 한국의 기소건수는 265배에 달했다.

한국과 영국의 의사 1인당 기소건수는 더 격차가 크다. 영국은 의사 21만 6008명 중 왕립기소부가 기소한 건수는 1.3건으로 의사 100명당 기소건수가 0.0006건에 불과해 한국이 영국의 895배를 기록했다.

우 원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필수의료를 한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실제 형사재판 판결에 있어서도 한국 의사 1만명당 연평균 유죄판결건수(1.55건)는 일본(0.2건)에 비해 7.7배, 영국(0.03건)에 비해 50배 이상 높다. 사법 포퓰리즘에 완전히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우 원장은 “필수의료 붕괴는 포퓰리즘을 극복하지 못하면 못 막는다”고 경고하며 공공의대 설립 등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을 필수의료 해결책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겨냥했다. 제21대 국회에서 특정 지역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하고자 하는 취지의 법률안은 2023년 8월 16일 기준으로 총 14건이 발의됐다. 이 중 6건이 국민의힘에서, 7건이 민주당에서, 1건이 정의당에서 나왔다. 포퓰리즘에는 여야도 없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거론됐다. 우 원장은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의 실태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방의료원은 중증환자를 볼 수 있는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 지방의료원의 입원 진료 제공 범위를 나타내는 DRG(Diagnosis Related Group)는 2차 민간병원에 비해 절반 조금 넘는 수준(56~64%)이고, 질환의 중증도 분류 기준에서 중증에 해당하는 전문 질환군 환자 비중은 민간병원 대비 5분의 1 수준이며 대부분은 일반 및 단순 질환군 환자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지방의료원의 구조적 문제 분석 및 코로나 대응 제도에서 참고할 운영 개선 방안(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이흥훈)'따르면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일반 및 단순 질환군 환자 중에서 재활 및 요양환자가 많아 평균 재원일수는 2차 민간병원에 비해 2배 가까운 상황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의료원이 민간병원에 비해 경증 질환 위주로 장기입원 진료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 원장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해야한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은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노조가입 현황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22년 기준 치과병원과 한방병원을 제외한 전체 의과 병원급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노조가입률을 살펴보면,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213곳 중 67곳이 노조에 가입돼 있고(31.5%) 민간의료기관은 전체 3262곳 중 73곳이 노조에 가입돼 있는(2.2%) 것으로 나타났다.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두번째 주제발표에서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전 이사는 “우리나라 필수의료 분야가 붕괴하는 이유는, 저수가와 더불어 일본 등 국가들에 비해 수십 배에서 수백 배 높은 '의료과오의 형사처벌 경향'에 기인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전 이사는 “중증환자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의 경우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환자가 사망이나 상해의 결과에 이를 개연성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형법' 및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등 현행법은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이사는 구체적인 제안으로 '필수의료종사자'가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로 발생한 의료사고로 인해 환자가 사상에 이른 경우,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패널토의에 참석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종합병원 진료에서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 채용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재정적 지원과, 필수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등 필수의료과 전공의를 불가항력 의료사고 형사기소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혜성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은 “정부가 하려는 필수의료 지원정책의 시작으로 최근 소청과 전공의에 지원수련금 100만원을 주는 예산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국회로 넘어갔다”며 “소청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1차, 2차, 3차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임 과장은 “정부 정책방향은 필수의료와 관련해 인력 증원을 제외하고는 크게 의료계와 방향성 차이가 없다. 필수의료가 강화되려면 응급의료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우선적으로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본다. 공공정책수가가 올해 9월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계속 의결되고 하다보면 연말부터는 성과가 나오는 것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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