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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7] ‘운동화 끈을 매지 마세요’(이석증 경험기)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7] ‘운동화 끈을 매지 마세요’(이석증 경험기)                                    
  • 의사신문
  • 승인 2023.09.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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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남 원장(조윤희산부인과의원)

지난 1월 어느 토요일 아침의 일이다. 아침에 깨어 몸을 일으키며 앉으려는데 갑자기 심하게 어지러워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70여 평생에 어지러움을 그렇게 심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라 혹시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일어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디선가 그런 일이 있을 때 혀를 입 밖으로 쑥 내밀어 좌우로 움직여보라는 말이 생각나서 혀를 좌우로 움직여 봐도 잘 움직였고 얼굴을 찡그리고 입을 좌우로 돌려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려고 하다가 또 오른쪽으로 푹 쓰러졌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거실에 있던 남편을 급히 소리쳐 불러 옆에 앉아 있어 달라 부탁하고, 한참 진정을 한 후 살그머니 조금씩 단계적으로 쉬면서 몸을 일으키니 조금 어지럽기는 해도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겨 천천히 다리를 침대 밖으로 늘어뜨려 걸터앉았다가 심호흡을 한 후 부축을 받고서야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정신 집중을 하며 많이 늦지 않게 출근을 할 수 있었고 좀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간신히 오전 근무를 마칠 수가 있었다.

무슨 증상일까 걱정하면서 가까운 이비인후과로 가니 이미 마감이 된 상태였지만 주말에 그런 중상이 또 올 까 겁이 나서 접수 간호사에게 간청을 하여 겨우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어두운 방에서 불빛을 사방으로 바꿔가며 불빛을 따라 쳐다보라고 하시더니 곧 옆방으로 가서 스키장에서 쓰는 고글 같은 안경을 씌우고 눈을 계속 뜨고 있으라 한다. 

그 고글은 컴퓨터 화면에 연결되어 있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침대위에 앉힌 채로 좌측 45도로, 다시 고개를 우측으로 90도로 돌려 우측 45도 방향을 보게 하였는데 그때까지는 아무 이상한 느낌이 없었다. 그 자세에서 “이제 침대에 눕히겠습니다”하고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발이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 솟으면서 머리는 뒤쪽으로 누운 채 낭떠러지를 향해 떨어지는 것 같이 무섭고 땀이 났다. “악!!”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아 버렸나보다. “눈을 크게 뜨세요! 감으면 안됩니다” 하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눈을 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은 듯 했다. 

다시 다른 방에 가서 같은 동작을 되풀이 했는데 역시 낭떠러지 경험을 하고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일어나서 진찰실로 돌아와 재검을 하니 다행히도 이석증으로 떨어졌던 돌이 제자리로 들어갔다고 안심을 시킨다. 

이석증은 솜털위에 얹혀 있다가 떨어진 이석이 평형을 관장하는 귀의 삼반규관으로 들어가서 림프관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라는 설명도 듣고, 제자리로 복구가 되었다는 말씀에 약간의 안심은 되었으나 또 재발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생겨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지어온 약을 먹고 지시받은 대로 두 시간쯤 소파에 앉아 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거실에 두었던 전화기가 울려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 나가 몸을 구부려서 전화기를 집는 순간 다시 쓰러져서 늑골 부위가 테이블에 부딪쳐 쾅하는 소리까지 났다. 또 걱정이 되었다. 

이석증의 2차 부작용으로, 넘어져 골절이 많다고 들어서 혹시나 했지만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고 한참 동안 가슴 부위에 통증을 느끼며 괴로웠었다. 2주후에도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생겨서 다시 진료를 갔더니 이석은 제자리에 잘 박혀있고 지난번 같이 떨어졌던 작은 먼지 같은 찌꺼기들 수천 개가 삼반규관내 림프액에 떠 있어서 당분간은 어지러움을 참고 지내라 하셨다. 

그리고 그 때 같이 떨어진 나머지 먼지 부스러기 같은 것들 때문에 당분간은 어지러움이 지속될 것이고 1개월 이내에 재발하는 일이 많으니 고개를 숙여 운동화 끈을 매는 동작 같은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3주가 지난 후에 동창 모임에 가서 고생한 얘기를 얘기했더니 친구들 절반가량이 그런 경험을 했다 하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하긴 이석증은 연간 40만 명이나 발병되는 매우 흔한 질환이란다. 그 날 모임이 끝날 무렵 신발 끈이 풀린 것을 알게 되었는데 “몸을 굽혀서 신발 끈을 매면 이석이 또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하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발을 어딘가 올려놓고 끈을 매려고 두리번거리는데 같이 그 얘기를 들었던 친구가 얼른 몸을 굽혀 신발 끈을 매어준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마치 목사님이 발을 씻겨주었을 때처럼 친구에게 참 황송하고 고마웠다. 그럭저럭 4주가 지나면서 아침저녁 있던 어지러운 증세도 사라졌다. 이제는 일어날 때도 몸을 조심조심 움직이며 느리게 살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이 듦이고 노쇠인가? 

우리들의 몸은 얼마나 예민한가? 그렇게 모래알보다 작고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작은 칼슘 돌들이 나의 온몸을 어지럽히고 쓰러지게 하고 일상생활을 못하게 하다니! 그런 황당한 경험을 하면서 우리의 사회에서도 어떤 개인의 작은 틀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인하여 사회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고 회복이 불가능해지는 일들, 또는 회복되는 듯 하다 재발하는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잠깐의 일탈로 인한 잘못된 생각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서 하는 작은 행동들이 확산되어 사회 전체의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볼썽사납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동안 자신만만했던 건강이 아주 작은 사건으로 금이 가고, 그로 인해 느림의 철학도 배우게 되니 나의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진 것 같아 그것 또한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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