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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응급 위주의 필수의료대책, 전공의 유인하기에 역부족”
“중증·응급 위주의 필수의료대책, 전공의 유인하기에 역부족”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9.1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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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
“정부 외과 대책, 여전히 미봉책···장기적 시각 갖춰야”
“개원가도 같이 살려야 전공의도 미래 그릴 수 있어”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지난 1월 발표됐지만 7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현장에서 대책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도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대표적인 기피과들은 저조한 지원율을 피하지 못했다. 이는 즉, 전공의들이 정부의 대책에서 비전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난 5일 보건복지부는 대한외과학회, 대한외과의사회와 필수의료 지원대책 추진 상황을 공유하고, 외과 수술 및 입원 수가를 개선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회장(서울시의사회 부회장)에 따르면 복지부가 내놓은 대책은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에서 거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이세라 회장에게 간담회 후일담과 정말 원하는 대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Q. 이번 복지부-외과계 간담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2차병원, 의원에 근무하는 외과계 의사들에 대한 대책을 배제하고 마련한 미봉책들만이 논의됐다. 정부가 당장 중증·응급에 초점을 맞추고 필수의료 정책을 내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를 살리는 근본적 해결책은 거의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을 하고자 한다.

복지부 제안은 ‘상대가치점수 제도를 재편하겠다’ 정도다. 그런데 그 논의는 과거부터 계속해왔다. 또 그간 외과계에는 미흡했기에 의사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한 내용이다.

Q. 의사들이 말하는 필수의료 근본적 해결책 제1순위는 ‘적정 보상’이다. 그런데 수가를 더 주겠다고 해도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정 보상이 중증과 응급에만 치중되어 있다. 또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평생 중증과 응급에만 매달려 살아갈 수 없다. 필수의료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해왔으나 사회적 문제가 될 때에만 급한 불 끄기 식으로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책 추진 속도감이 없어 현장에서는 체감이 안 된다. 젊은 의사들은 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상대가치점수 체계 개선은 정부가 과거부터 해왔던 이야기다. 정부 약속을 믿고 기다렸다가는 또 없던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외과의사회의 근본적인 요구는 ‘상대가치점수 내에서 의사 업무량(행위료)를 현실화해 달라’는 것인데 정부에서 그건 안 된다고 한다. 의료사고특례법 제정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위험도나 의료분쟁 대안으로 ‘상대가치 안에 위험도를 국가가 가져가고, 의료사고 배상금을 국가가 책임져달라’고 하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된다고 하니 차라리 의사를 공무원으로 만들라고 하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Q. 중증·응급의료 위주의 필수의료 대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증과 응급만 강조하다 보면 비응급 진료와 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생존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외과 개원시장도 더 각박해질 것인데, 전공의들이 외과나 필수의료 분야에서 더더욱 비전을 못 본다.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분야에서 미래를 볼 수 있으려면 개원가도 균형있게 같이 살려야 한다는 의미다.

Q. 복지부 측에서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은 어렵다고 했다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법무부에서 어렵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들었다. 다른 직역과의 법적 형평성 문제가 제일 큰듯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조인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의료사고 특례법은 ‘우리나라 (형사)법 체계 없다’라고 하면서 반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방면에서 생각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법도 세계 어디에도 유례없는 법이다. 잘못 만들어진 법 아래 일을 하고 있으니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있어서는 특례법으로 보호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 원인불명이거나 불가항력적인 의료분쟁에 대해 배상 책임이라도 국가가 책임져줘야 할 것 아닌가.

Q. 수가 외에 복지부가 제안한 사항은?

전공의 배정 문제인데 외과 전공의 정원을 줄이자고 한다. 전공의 충원율이 유난히 낮은 과들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여기서 남게되는 전공의 정원을 내과나 다른 과에 주는 것을 제안받았다. 이에 외과학회는 이전에 수동적 동의를 한 바 있으나, 간담회 자리에서는 복지부에 재고를 요청했다. 학회는 외과 전공의를 더 뽑고 싶어도 못 뽑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Q. 상대가치점수 현실화, 필수의료의료사고 특례법 등 외에 외과를 살릴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을 제안한다면?

상대적으로 의사 수명이 짧은 필수의료 의사들을 위한 연금을 만들었으면 한다. 사학연금이나 군인연금처럼 말이다. 외과 의사들은 60세만 넘으면 체력이 떨어지면서 역량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정년 퇴임을 할 나이가 되거나 여러 이유로 수술을 못하게 되면 요양병원이나 보건소로 진로를 변경한다. 대부분 기피하는 분야를 오랜 기간 지켜온 노고에 대해 위로하고 보답하는 차원에서 연금과 같은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제안이다.

또 하나는 대학병원 외과 전문의 1인당 1일 전신마취 환자 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차적으로 더 많은 외과 전문의를 뽑게 된다. 전문의가 많아지면 지금 수가로는 도저히 운영이 안 될테니 수가를 조정해달라는 제안이 대두될 것이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를 더 증원해 달라는 요구와는 다른 문제다.

마지막으로는 임시공휴일에도 공휴일 가산 수가를 적용해달라는 요구다. 이것은 모든 의료기관이 같이 살자고 하는 제안이다. 공휴일이니 직원들 급여는 공휴일이라고 가산되는데, 수가는 평일 수가가 적용된다. 말이 안 된다. 오래전부터 의사단체가 요구했으나 정부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자유와 공정을 주장한 윤석열 정부에서 이 문제의 적극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정부가 오랜 기간 동안 미봉책만을 내놓아왔기에 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계는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 와중에 당장 전공의들이 사라져가니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라면 필수의료 의사 고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좀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바라봐야만 필수의료 인력 문제가 품질을 유지하면서 해결이 될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강조하면서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푸대접을 계속하는 정책은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들이 봉직의를 하든, 개원을 하든 비응급이나 피부 미용하는 의사들과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는, 오히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필수의료에 자원할 것이다.

그런 정책이 아니라면 의대 입시 인기는 고공행진을 하겠지만 필수의료 분야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당장 내년 전공의 충원 결과가 정책 방향성이 옳은지에 대한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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