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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6]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아니고, 이제 보이는 것들
[의학문인회 수필릴레이 6]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아니고, 이제 보이는 것들
  • 의사신문
  • 승인 2023.09.05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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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식 빈센트의원 원장

우리가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것은, 이미 그 무엇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이미 있었던 아름다움을 지난 언젠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야 보이는 것들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항상 존재했었음에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아마 실제로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흔한 이야기로, 좋든 나쁘던 그 무엇이든지 반복되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되면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감사함을 모르고 외면하듯이, 아무리 소중한 것도 외면하여, 잃어버린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제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신비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나에게 과거에 잃어버린 신비를 되찾는다거나, 자연의 신비를 통한 뭔가 도움을 청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혹은 나의 나이라는 한계가 가르쳐주는, 어쩌면 그 신비와 영원히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각성이 갑자기 현실을 깨닫게 하고, 외면했던 신비를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에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여름에 이 숲속 벤치에 앉아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은 푸른 잎으로 우산처럼 두텁게 가두어지고, 푸르른 대기를 머금은 공간으로 가득하다. 푸른 이파리 사이로 좁고 긴 통로들은 하늘과 이어지고 하늘은 이제 작은 신비가 되었다. 짙은 어둠처럼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 기둥들은 초록 하늘에서 내리는 검은 빗줄기를 닮았다. 어둠의 기둥으로부터 스며든 무섬증은 좁게 길게 내려오는 햇빛의 구원으로 오히려 무섭지 않고 아늑하게 보인다. 

숲속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연주이련가? 새들의 다양한 소리와 함께 어둠의 기둥 사이로 용트림하듯 시원하게 흘러가는 바람결이 있고, 바람결에 인사하는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리고 바람마다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햇살들의 배려가 이제는 내게도 보인다. 어느 한순간에 조용해져 멈추어진 시간, 오케스트라 음률의 소리 없는 반향으로 고요마저 악보의 일부이다.

이 숲속 공간에 중간이 잘린 고목처럼 그렇게 벤치에 앉아있으면서, 밤에 꿈을 꾸는 것처럼, 신선하고 생생한 몽환의 느낌으로 나는 숲속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발은 뿌리가 되어, 작년에 춤추었던 수억 년의 이야기가 깃든 낙엽 속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이 숲의 어머니는 누구일까? 수억 년 전에 이 숲의 뿌리는 누구일까? 이 숲의 신비는 몇억 년의 변화를 머금은 마법의 공간인가? 이 숲속에 멈추어 앉아있는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나’라는 존재는 수억 년의 세월을 거슬러 어떻게 이곳에 초대된 생명체인가? 숲속에 공기와 공간은 작게 제한되고, 그런 나의 주위에, 축제의 무대처럼 나무 기둥은 그렇게 말없이 모두 서 있고, 양팔을 들어 이파리와 새소리들을 올려바치면, 숲은 나만 알 수 없는 속삭임으로 시끄럽게 속말을 한다. 

나는 가만히 어린 나를 소환한다. 

어린 너는 이것을 그렇게 보고 싶었지? 이러한 신선함과 푸르름! 이러한 신비의 오케스트라에 청중으로 참석하고 싶었지? 그리고 이러한 연주의 공간 한가운데 제일 좋은 자리에 초대받고 싶었지? 그리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지?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나’ 대신에, 나에게만 보이는 네가 그 자리에 앉아보렴! 그리고 너의 기쁨을 지천의 들꽃들처럼 피워보렴! 나는 너의 기쁨을 통해 지금의 나를 치유 받는단다. 반복된 생활에 지치고, 언젠가는 놓아버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의 휘둘림과 혹은 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삶의 상처들을! 

눈을 한 참이나 감았다. 

심장은 호수의 파도처럼 편안하게 뛰고 몸은 가벼워졌다. 콧속을 흐르는 숨결은 한가롭다. 발아래 내린 뿌리를 감쌌던 낙엽들은 바람결에 흔들려 잡았던 힘은 사라지고 나의 발은 그렇게 자유스러워졌다. 가벼워진 다리는 달리고 싶지만, 숲속 어둡고 근엄하게 나무 기둥으로 서 있는 주인들에 대한 배려로, 소리 내지 않고 품위 있는 걸음으로 조용조용 길 따라 나아간다. 

바람이 불고 숲은 손을 흔들어 뒤에서 헤어짐의 인사로 가득하다. 등짝이 시원하여 돌아보니, ‘어린 나’가 그 숲에 안기어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잠을! 언젠가 다시 오고 싶다. 이 치유의 숲을 찾아서, 어린 내가 편안히 쉬고 있는 이곳으로,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나’가 행복해지는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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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하 2023-09-06 09:32:55
마음에 울림을 주는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