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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2] 라푼젤, 의학 속에 들다
[의학문인회 수필 릴레이 2] 라푼젤, 의학 속에 들다
  • 의사신문
  • 승인 2023.08.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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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 과장(씨엠병원 내분비내과, 시인, 수필가)

“입으로 삼킨 머리카락이 위 속에 가득 돌덩어리처럼 뭉쳐, 이른 바 모발석을 형성하여 소장까지 걸쳐 꼬리처럼 뻗쳐 있었다. 수술로 제거할 때, 큰 덩어리가 장벽에 단단히 붙어 있어서 떼어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모발석은 소장 벽을 이미 열여덟 군데에서 뚫어 천공이 있었다. 결국 모발석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 부분의 소장을 잘라내야 했다.”

1968년 2월, 본·소이어·스콧 등은 긴 머리털을 삼키고, 그로 인해 심각한 장폐색을 일으켜 수술 받은 젊은 여성 환자 두 명의 증례를 보고하였다. 그들은 병변에 이름을 붙였다. ‘라푼젤 증후군’

그림 형제가 펴낸 ‘어린이와 가정의 동화’(1812년) 속 라푼젤은 ‘태양 아래 가장 아름다운 소녀’다. 그녀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특징은, 엄청나게 풍성하고 기막히게 순금에서 자아낸 긴 실 같은 머리털이었다. 라푼젤은 열두 살 나이에 한 마법사에 의해, 계단도 문도 없고, 단지 꼭대기에 작은 창문이 단 하나 있는 탑에 가두어졌다. 탑에 갇혀 왕자가 구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녀는 머리카락을 자를 요량을 못 했다. 그녀는 머리털을 길러서 이십 층쯤 아래로 늘어뜨렸고, 사랑하는 왕자는 그 털을 타고 탑에 올라 그녀를 구했다. 

그림 형제가 채집한 동화 속의 라푼젤은 머리털을 뽑지도 먹지도 않았다. 그런데 긴 머리를 삼키고 장폐색을 일으킨 병적 상황과 라푼젤을 연관시켜 병명을 지었을까? 추론의 끈을 길게 늘어뜨려 파레이돌리아에 잇댄다.

변상증(變像症)이라고도 불리는 파레이돌리아는 무작위 자극에서 패턴을 보려 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사물에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 속성 중에서 가장 흔한 게, 얼굴이 없는 물체에서 얼굴 모습을 보려는 심리다. 예를 들어, 점 세 개만 찍어 놓아도 사람의 얼굴을, 한 줄 곡선만 보아도 웃는 얼굴을 떠올린다. 하늘에 무심히 떠가는 구름이 고향 어머니나 그리운 연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좀 더 규모가 커지면, 보름달 속에 계수나무를 무성하게 키워 토끼가 살게 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파레이돌리아 현상은 우리의 생존에 다음의 이유들로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아기가 파레이돌리아를 경험하면, 보호자의 돌봄을 더 받을 경향이 높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저술가이며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의 주장에 따르면, “백만 년 전에, 웃는 얼굴을 다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작아져, 생존할 확률이 낮았다.” 

또한, 포식자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일단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영국 심리학회의 크리스토퍼 프렌치는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한다. “석기 시대, 한 남자가 수염을 긁으며 덤불 속에서 바스락거리고 있을지라도, 일단 호랑이가 아닌지 궁금해야 한다. 호랑이라고 가정하고 대비하면 생존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의 점심으로 생이 끝날 수도 있다.” 

즉, 파레이돌리아는 우리의 생존본능의 하나라는 게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종교적이거나 초자연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파레이돌리아를 더 쉽게 경험한다는 가설이 있다. 신경이 과민한 사람들과 부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파레이돌리아를 더 잘 겪을 수 있다고 한다. 역시 이들이 위험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팽팽한 경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파레이돌리아는 착시가 아니다. 착시는 왜곡되어 보이는 것이고, 파레이돌리아는 왜곡하여 보려는 것이다. 

동화가 출판되고 나서 백오십육 년이 지난 어느 날,  세 의사는 수술대 위에 누인 젊은 여성의 뱃속에 가득 들어 있는 단단히 꼬여 뭉친 긴 머리털 덩어리를 발견하였다. 긴 머리털.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병적 상황과 젊은 여자의 장에서 나온 머리털 덩어리. 문득 그들은 유년 시절 읽었던 동화를 기억했을 것이다. 그 모양이 마치 라푼젤의 삼단같이 치렁치렁한 긴 머리털을 닮지 않았는가. 그 순간, 그들은 마치 머리털의 마력에 홀린 듯 동시에 소리쳤다. “라푼젤!” 그림 형제의 진기한 동화가 그들의 문학적 파레이올리아를 강렬하게 발동 시켰을 것이다. 비록 이 추론이 굴먹하더라도, 이런 추론을 풀어볼 마음이 생기게 한 여지와, 그 여지를 채울 수 있는 넉넉한 이야깃거리를 차려준 그들의 착상이 퍽 고맙다. 미루어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주는 이들에 의해 문학과 의학의 접경은 더욱 분주하고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풍성한 분주야말로, 어쩌면 바로 라푼젤의 긴 머리털이 펼치는 마법의 한 가닥일지도 모르겠다는 공상이 휙 스쳐 간다.
 
의학 속에 들어선 동화는 메마르기 쉬운 의학에 다채로운 습윤(濕潤)을 보태며, 의학 명칭의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친숙한 이야기​​나 허물없는 공감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생하고 유쾌한 의학적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현재 의학은 매력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의학적 상태에 관한 정확하고 간단명료한 과학적 설명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정확과 간명이 자칫 흘리기 쉬운 따뜻하고 친숙한 생동감을 고스란히 담아 줄 수 있는 의학 속 동화 주인공, 그의 등장에 데면데면한 진료실의 메마름이 못내 아쉽다. 

의학과 문학의 접경에 서서, ‘동화 3부작’의 저자인 의사 작가 발레리 그리번의 의견을 공유한다.

“동화와 의학은 모두 밤에 닥칠 일을 다룬다. 미지의 세계, 어두운 숲, 모호한 그림자 세상이다. 병원에 가면 질병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바깥세상에서 질병 세계로의 전위다. 의학은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더 깊이 다가가 동정심을 갖는 것으로 생각한다. 동화와 의학, 모두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상태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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