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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갑질’에 교사 극단 선택···소청과 의사들 “남 일 아니다”
학부모 ‘갑질’에 교사 극단 선택···소청과 의사들 “남 일 아니다”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07.27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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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같은 처지” 동정론 확산···최근에도 ‘소아과 문 닫게 한 사건’ 발생
“아이들이 좋아 선택한 직업인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괴감 들게 해
서이초 찾은 추모객들(사진 오른쪽)25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시민들이 교내에서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위한 추모 메시지를 읽고 있다.(사진=뉴스1)
서이초등학교를 찾은 추모객들. (사진 左=뉴스1)

신규 임용된 지 2년밖에 안 된 24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들의 ‘갑질’을 비롯한 학교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소청과 의사들도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으로서 부모들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교사노조는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와 무분별한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대책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들이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항목 중 1순위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지도할 때’(95.3%)가 꼽혔고 ‘과중한 업무’(87.1%)가 2순위, ‘학교 공동체의 지지 및 보호 체계 부재’(84.1%)가 3순위로 나타났다. 특히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81.6%)도 4순위를 차지할 만큼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한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으로 인해 교육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나 민원 등으로 인해 진료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도 초등학교 사건의 '데자뷰'라고 할 만큼 한 신도시의 모 소아청소년과의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진료를 보러 온 9세 환아를 의원 원장이 보호자를 대동할 것을 안내하며 다시 돌려보냈다는 이유로 보호자가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해 회의를 느낀 원장이 그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소아청소년과의원의 문을 닫게 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해당 보호자가 보건소에 거짓 신고를 했을 뿐만 아니라 ‘맘카페’에 거짓 내용까지 올렸다면서 이 보호자를 아동학대방임죄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즉, 소아청소년과나 초등학교나 일부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나 민원으로 인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소청과 의사들 사이에서 동정론은 더 확산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A씨는 “앞길이 창창한 젊은 교사가 한창 꿈 많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소아청소년 진료를 하면서도 부모들의 무분별한 항의나 민원 제기로 인해 당장 병원 문을 닫고 싶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 상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B씨는 “하루하루 부모들을 상대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아이들이 좋아서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는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 때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C씨는 “일부 부모들이 조그만 일에도 민원을 내고 소송을 벌여 진료 활동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100명의 좋은 보호자를 만나도 일명 ‘진상’ 1명을 당할 수 없다”며 “이러한 악성 민원자들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큰 스트레스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다른 환아들에게 미치는 피해도 너무 크기 때문에 하루빨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환아와 보호자를 함께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의료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 커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엔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부족해 ‘오픈런’까지 발생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바닥을 치다가 올해 상반기 전국 67개 수련병원의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16.4%로 정원 207명 중 33명만이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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