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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종 진단 놓쳐 하지 마비된 환자···대법 "의사 주의의무 위반"
혈종 진단 놓쳐 하지 마비된 환자···대법 "의사 주의의무 위반"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7.2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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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병원 상대로 2억여원 손해배상 청구
1·2심, "합리적인 진료방법 선택"···환자 패소
대법, "혈종 진단 놓쳤을 가능성"···파기환송

의사가 환자의 요추 자기공명영상(L-spine MRI) 검사 판독 결과에 나타난 척추 경막외 혈종을 놓쳐 환자의 다리가 마비됐다면 의사로서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환자 A씨와 자녀들이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4년 10월 허리 통증으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후송됐다. 정형외과 전공의 B씨는 요추 MRI 검사 결과 A씨의 증상을 ‘요추 4-5번 척추관 협착증’과 ‘좌측 추간판 탈출증’으로 진단했다. 

당시 '다음날부터 휴일이라 입원하더라도 당장 수술하지 못한다'는 B씨의 설명에 A씨는 "집 근처 정형외과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증상이 나빠지면 다시 오겠다"고 했고, B씨는 전원 조치를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A씨의 요추 MRI 검사 판독 결과에는 ‘흉추 12번부터 요추 1번에 걸친 척추 경막외 혈종, 척수 압박 중등도 이상’이라고 기재돼 있었는데, B씨가 이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집 근처 정형외과에 입원한 A씨는 이틀 만에 통증이 심해지고 다리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자 다시 충남대병원을 찾아 흉추 9번과 12번 사이의 경막외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하지 마비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게 됐다.

이에 A씨는 "경막외 출혈을 제거하기 위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는데도 B씨가 '물리 치료와 보존적 치료로 충분하다'고 조언해 하지 마비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2억여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추 MRI 검사 결과 A씨에게 척추 경막외 혈종 등 출혈이 있었는데도 B씨가 수술이 아닌 보존적 치료방법을 선택해 전원조치를 한 것은 합리적인 진료방법 선택이었던 만큼, B씨에게 의료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2심은 "B씨가 A씨를 전원하면서 통상적 업무처리에 따라 요추 MRI 검사 결과 등 의료정보를 제공했을 것으로 보이고, A씨가 신속한 수술을 받지 못한 것도 전원조치 시 출혈 증상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없다"며 "당시 A씨에게는 가벼운 신경학적 증상만 있어서 보존적 치료를 했을 뿐, 수술 등 침습행위나 나쁜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설명의무 위반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B씨가 의사에게 요구되는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1·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척추 경막외 혈종은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한 후 12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하지마비 등 치명적·영구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요추 MRI 검사 등에서 상당량의 척추 경막외 혈종이 드러나고 환자에게 관련 증상들이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의료진으로서는 정확한 진단을 통해 응급상황을 대비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에게 당장의 중한 신경학적 증상이 보이지 않아 보존적 치료를 선택하더라도 증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복용 중인 약물을 확인해 출혈성 경향이 있는 약물의 복용을 중단하도록 하는 조치를 해야 하며, 신경학적 이상소견이 나타나면 신속히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세밀한 경과관찰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은 B씨가 영상의학과의 판독 없이 요추 MRI를 자체적으로 확인하면서 A씨에 대한 척추 경막외 혈종을 진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씨가 요추 MRI 검사 이후 충남대병원에 머문 시간은 4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영상의학과 의사가 검사 결과를 판독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B씨가 A씨의 진료기록이나 응급환자 전원의뢰·동의서에도 ‘요추 4-5번 척추관 협착증과 추간판 탈출증, 좌측’이라는 진단명만 기재했을 뿐 척추 경막외 혈종 관련 진단은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만약 B씨가 A씨에 대한 척추 경막외 혈종을 진단하지 못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검사와 치료를 다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특히 출혈 방지를 위해서는 혈액응고 검사를 시행해 수치를 확인한 다음 A씨가 출혈성 경향이 있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면 이를 중단시키고, 상황에 따라서는 비타민K나 신선동결혈장 투여 등의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같은 검사와 치료를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B씨가 A씨의 척추 경막외 혈종을 진단했는데도 보존적 치료를 선택해 전원조치를 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고려해 전원 병원 의료진에게 A씨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A씨나 보호자에게도 당시 상태와 척추 경막외 혈종이 더 커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과 치료방법 등을 설명해야 했지만, 이 같은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결국 B씨가 A씨의 척추 경막외 혈종을 진단해 A씨를 입원시켜 경과를 관찰했거나 전원조치를 하더라도 A씨의 정확한 상태를 전원 병원 의료진 등에게 알렸다면 A씨의 하지 마비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B씨가 요추 MRI 검사에서 척추 경막외 혈종을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이를 진단하지 못했다면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있는지, 보존적 치료가 적절한 조치였는지, 전원조치를 할 때 척추 경막외 혈종 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설명했는지 등을 심리해 B씨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와 병원의 손해배상책임 여부 등을 판단했어야 한다"며 "원심 판단에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따른 주의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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