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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이삿짐센터
베토벤 이삿짐센터
  • 홍영준(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 승인 2023.07.1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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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내 여동생이 서초동 ‘예술의 전당’만큼이나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이 압구정동 <풍월당>이다. 그곳에서 음반을 사기도 하고 작은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며 이따금 음악 강의도 듣는다. 얼마 전에 풍월당 대표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박종호 선생 강의를 듣고 온 동생이 느닷없이 이삿짐센터 새로 차릴 분 있으면 상호를 <베토벤 이삿짐센터>로 하면 어떻겠느냐 그런다. 간혹 우스개로 영화배우 ‘짐 캐리’나 아이돌 가수 ‘나르샤’의 이름이 이삿짐센터에 잘 어울리겠단 소린 들어봤어도 악성(樂聖) 베토벤이라니?
 
박종호 선생에 따르면 베토벤은 비엔나에서 살았던 약 35년 기간 중 무려 80번 이상을 이사했다고 한다. 그쯤 되면 음악뿐 아니라 이삿짐 싸기에도 세계적 대가가 되었을 테니 ‘베토벤’이란 이름을 이삿짐센터에서 차용하면 꽤 독특하고 멋지지 않겠느냐는 의미란다. 내친김에 우리의 박종호 선생은 <베토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아예 헤어스타일도 베토벤처럼 파마머릴 하고, 짐을 옮길 때 ‘운명 교향곡’이 웅장하게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까지 보태신다고.
  
어쩌다 동생에게 얻어들은 트리비아에 갑자기 관심이 생긴 나는 정말로 베토벤이 그렇게까지 이사를 자주 다녔는지, 그랬다면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궁금증은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The 39 Apartments of Ludwig Van Beethoven)>이란 제목의 재기발랄한 그림책을 사보고서야 조금 풀렸다.
  
박종호 선생은 베토벤의 이사 횟수를 80여 회로 이야기했으나 이 그림책의 저자 조나 윈터는 ‘최소한 39회’라며 숫자를 조금 낮춘다. 인용 문헌에 따라 이 수치는 오락가락하지만 실제로 비엔나 시내에 가보면 베토벤이 한때 살았었다는 간판이 붙은 집이 셀 수 없이 많은 모양이다. 어쨌든 셋집을 수없이 전전하던 베토벤에게는 작곡에 사용하던 다리 없는 피아노가 무려 다섯 대나 있었다고 하니 매번 이사 때마다 그걸 옮기는 일이 최대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조나 윈터는 당시 피아노의 수직 이동 수단으로 지붕에 도르래를 매달았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거기까진 뭐 수긍할 수 있지만, 건물 꼭대기에서 다시 지붕과 지붕을 연결하는 기다란 미끄럼틀을 설치했을 거라는 둥, 거리가 좀 있는 경우엔 도착 지점에 거대한 방석을 깔아놓고 투석기로 피아노를 공중으로 쏘아 보냈을 거라는 둥, 점점 황당한 추리를 늘어놓아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기에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모큐멘터리(mock + documentary)’라 부른다. 근거의 수준이 들쭉날쭉한 걸 충분히 참작하면서 그가 말하는 베토벤의 잦은 이사 이유를 살펴보았다. 방세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궁핍했다든지 방에서 끔찍한 치즈 냄새가 났다든지 하는 기록도 있지만 가장 빈번했던 이유는 이웃들의 항의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믿거나 말거나, 베토벤이 살던 곳 위아래의 집들에서 귀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수백 개의 귀마개가 발견될 정도였다니 밤낮없이 쿵쾅거리던 베토벤에 대해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 그가 방음이 훨씬 잘 된 오늘날의 아파트에 살았더라도 층간소음 기준 초과로 처벌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비록 그림책에서는 가볍게 묘사되나, 셋집에서 쫓겨날 만큼 심각하게 베토벤이 시끄러웠던 이유는 그의 망가진 청력 때문일 것이다. 사료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베토벤은 막 명성을 얻은 직후인 26세 되던 해부터 귀가 나빠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32세 때 동생들 앞으로 썼다는 유서에서 그는 비참한 심경을 토로한다. 자기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제발 더 크게 말해주세요. 소리를 질러 주세요. 난 귀머거리에요!”라고 말할 수 있겠냐면서. 세상과 단절된 고독 가운데서,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상실했다는 좌절 속에서, 마구 건반을 두드리고 걸핏하면 머리에 물을 끼얹던 그의 모습은 그때부터 이미 광인의 몸짓이었다.
  
베토벤의 잦은 이사에 대한 호기심은 그의 질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는 이내 의학문헌 검색을 시작했다. 사후에 부검까지 했다기에 의사들이 정리한 기록이 있으리라 믿었다. 놀랍게도 2021년 유럽 이비인후과 학술지에는 지난 100년간 베토벤의 청력 손실 원인을 추정한 수십 편의 연구들을 하나로 요약한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 논문이 실렸다. 가설이지만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의심했던 질병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이경화증(otosclerosis), 매독, 파제트병(Paget’s disease), 그리고 달리 분류 안 되는 신경성 난청(neural deafness not otherwise specified).
  
위 연구보다 더 관심을 끌었던 것은 2023년 <커런트 바이올로지 (Current Biology)>에 실린 ‘베토벤 머리카락 유전체 분석’ 논문이었다. 베토벤에 관심 있는 전 세계의 생물학자, 유전학자, 진화 인류학자, 데이터 전문가 등이 달라붙어 각기 다른 여덟 곳에서 보존되어 온 베토벤 머리카락 덩어리를 최첨단 기법으로 분석한 연구다. 기대를 모았지만 청력 손실의 원인을 밝히진 못했다. 대신 베토벤이 알코올에 의해 간 손상을 받기 쉬운 유전자형을 가졌다는 사실과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아냈고 이는 간경화가 있었다는 그의 부검 소견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납중독을 사인으로 추정했던 이전의 연구 결과가 어처구니없게도 엉뚱한 사람의 머리털을 분석했던 데서 기인한 오류였음을 밝힌 것도 성과라 할 수 있다.
  
<베토벤 이삿짐센터>에서 시작해 적지 않은 시간을 이것저것 베토벤 공부에 투자했던 나는 마침내 ‘베토벤’이란 이름이 이삿짐센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이사를 수없이 많이 한 건 맞지만, 그래서 청소와 포장의 스킬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짐 옮기는 그 과정은 매번 죽고 싶을 정도로 질병의 엄청난 고통을 상기시키는 시간이었으리라. 역설적이지만, 불타는 투병 의지와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 또한 교차하는 시간이었으리라. 따라서 굳이 그의 이름을 쓰려거든, 차라리 <베토벤 병원>이 훨씬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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