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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료체계 붕괴 막으려면 법·제도·국민인식 모두 바꿔야
응급의료체계 붕괴 막으려면 법·제도·국민인식 모두 바꿔야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07.1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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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한응급의학醫 기자간담회서 경증환자 이송 중단 등 대책 요구
이형민 회장 "올해만 전공의 10명 그만둬···지원율 하락 심화도 우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이하 의사회, 회장 이형민)가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선 법·제도적 개선이 대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16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개최한 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의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민·형사소송의 두려움 없는 명백한 과실 없는 의료행위에 대한 면책 확대 및 불가피한 의료사고 위험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보호하는 응급의료 사고 책임보험 도입 △환자 수용여부를 경찰의 수사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 즉각 중단 △119 전면 유료화 및 경증환자 이송 즉각 중단 등의 실행을 요구했다.

이형민 회장은 “올해만 10명의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그만뒀고 20~30명의 전문의들이 다른 과로 이탈했다”라며 “현재와 같은 응급의료진의 대량이탈과 지원율 하락이 심화될 경우 응급의료체계의 붕괴는 멀지 않았으며, 한 번 망가진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회는 최근들어 빈번히 발생하는 중증환자의 응급실 이송지연과 환자거부는 이전부터 지속됐던 문제들이 심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응급의학 전문의가 부족하거나 응급실 침대가 부족한 것이 아닌 배후진료나 중환자실, 수술인력 부재 등 최종 치료 인프라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의사회에 따르면 과거 사전연락 없이 환자를 이송했던 때는 처음 환자를 수용했던 응급실에서 최종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경우 이송지연과 연락, 병원 선정의 부담을 수용한 응급실의 근무자가 모두 지고 있었다. 혼자서 근무하는 응급실이 전체 응급실의 50%가 넘는 상황에서 유일한 의료진이 장시간 전원 업무에 매달릴 경우 정상적인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지나면서 119의 사전수용여부 확인이 일반화되고, 과거 경험상 문제가 되거나 입원, 수술 등 최종치료가 어려워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수용거부가 최근들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또 명백한 잘못이 없음에도 법적인 책임을 지는 판결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중증이나 사망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 대한 소극적 진료와 방어진료 기조가 확산됐다.

또 수용거부 금지에 대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수용의 책임을 강제로 응급의료진에 전가한다는 불만과 문제의식이 현장에서 심화되고 있다.

응급의학과를 살리기 위해선 정부의 제도적 개선을 비롯해 국민들의 인식 변환 필요성이 거론됐다.

김태훈 정책이사는 “여러 문제에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겹쳐져 이송지연 등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경증환자가 몰려드는 문제도 있다. 의사회 측에선 UCC(급성기 클리닉, Urgent Care Clinic) 등의 경증환자 진료 시스템을 제안해 왔지만 정부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경증환자를 빠르게 진료할 수 있는 다른 의료기관 시스템이 필요하고, 국민들도 그러한 문화적 인식과 변환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UCC는 의원급 응급실의 개념으로 경증환자를 1차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형태의 의료기관이다. 북미 지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저수가의 문제로 UCC가 자리잡기 힘든 토양이다.

김홍재 총무이사는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대구 소재 모 병원의 전공의를 조사하는 행태를 겨냥해 “개인의 노력이나 한 병원의 희생으로 응급의료체계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책임자만 찾아내고 법적 책임을 묻는 상황이 의료진들을 떠나게 만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최석재 홍보이사 역시 “우리나라의 특수한 수가 제도 때문에 병원은 중증환자를 볼 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응급실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전공의를 처벌하는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 홍보이사는 119 출동을 마구잡이로 이용하는 국민 인식도 비판했다. 최 홍보이사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지방 같은 경우는 가슴이 아프다며 119를 호출하여 타고 병원까지 와서 외래를 가거나, 병원 밖으로 그냥 나가는 일도 벌어진다. 10년 전 구급차가 한번 출동할 때마다 50만원의 세금이 투입된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다. 물가를 생각한다면 지금은 100만원 정도 될 것이다. 119출동 남용도 응급실 과밀화의 원인이다. 119를 유료화해야한다. 중증이면 청구를 안해도 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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