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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아청소년과’ 사태 ‘응급의학과’에서 재연, 방치하면 안 돼
[기자수첩] ‘소아청소년과’ 사태 ‘응급의학과’에서 재연, 방치하면 안 돼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07.11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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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 현장을 떠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응급의학의들에게도 새로운 선택지로 개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주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소속돼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 전문의들에게 개원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서 활동하는 2200여 명의 응급의학 전문의 중 10%가 넘는 300명 이상이 개원가에서 의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극심한 저수가로 인한 낮은 보상과 ‘워라벨’에 더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까지 높아져 이로 인해 다른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이 가속화된 지 오래인데, 이제 똑같은 이유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더 이상 회생도 어려워 보이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관련된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지난 2017년까지 113.2%였던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 △2020년 74% △2021년 37.3% △ 2022년 27.5% △ 2023년 15.9%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후 의료진들은 모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응급의학과에서도 소청과 사태와 같은 일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중증외상환자가 사망한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관련해 당국이 해당 병원들에 대해 과태료 행정처분을 내린 것에 이어 경찰이 해당 환자를 첫 번째로 진료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송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해당 전공의가 당시 환자의 외상보다 정신적인 문제점이 더 크다고 진단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비전문가라도 전공의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환자에게 정신건강적인 문제가 있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불과 3m 높이에서 떨어져 의식이 멀쩡하고 다리가 좀 다친 것 같다고 최초로 전해 들은 전공의가 정신과 진료를 함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의학적 판단을 한 것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이는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들도 적절한 판단이라고 인정한 사안이다.

이후 환자가 사망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전공의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3시간 동안 구급차에 실려 ‘뺑뺑이’를 돌다가 결국 환자가 사망한 것임에도 경찰은 피교육생 신분이기도 한 전공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현재 의사들이 너무 배가 불러 낮은 보상과 워라벨은 물론이고 심지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까지 감수하며 필수의료 분야에 지원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런 필수의료 분야에도 의사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의사 수를 충분히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줄여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무서운 발상이지만, 만약 정말 이런 식으로 정부가 바라는 정도의 ‘낙수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과연 의과대학의 문을 얼마나 넓혀야 한다는 것인가? 

사실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대 증원이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특히 가혹한 저수가 제도, 그리고 생명에 직결된 분야일수록 의료진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걸을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법제도의 개선이다. 

또 한 가지 응급실에 필요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응급의료 자원을 정상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더 이상 대형병원 응급실에만 환자가 몰려 경증 환자들과 중증 환자들이 구분 없이 뒤섞여 진짜 중증 환자들이 ‘구급차 뺑뺑이’나 돌다 제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사망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5~60대 응급의학 교수들이 야간 당직을 서는 게 낯설지 않은 광경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의료진의 희생과 사명감에만 기댈 게 아니라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 ‘소청과’ 전공의 급감 원인을 당장 앞서 목도하고도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당국’까지 하나가 돼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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