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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리가 아니야!”
“그 다리가 아니야!”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3.07.04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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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3)
전성훈 변호사(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전성훈 변호사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질병이 심해지거나 사고를 당한다. 의사가 왼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한다.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으니 수술에 동의한다. 마취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수술이 잘 안 되었나요?’라고 묻자, 한 의사가 다가와서 말한다. ‘의료진이 실수로 오른다리를 절단했습니다. 곧 왼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다시 받으셔야 합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은 영화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일어나는 사고이고, 심지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2023년 멕시코에 사는 60대 할머니는 의료진으로부터 왼쪽 무릎 연골이 완전히 닳았다는 진단과 함께 왼다리 절단수술을 권유받았다. 할머니는 평소 통증이 극심하여 부득이 승낙했다. 그런데 수술 전에 간호사들이 오른쪽 다리를 열심히 닦고 소독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그 다리가 아니야!’라고 외쳤다. 간호사들은 ‘의사 선생님이 잘 알아서 하실 테니 걱정마시라’고 하면서 귓등으로 들었다. 할머니가 몇 번이고 외쳤음에도 간호사들은 노인네 헛소리로 치부했고, 결국 위 상황이 그대로 일어났다.

2021년 오스트리아의 한 82세 환자 역시 당뇨 합병증이 심해 절단하기로 한 왼다리 대신 의사의 실수로 오른다리를 절단당했다. 얼마 후 절단이 필요했던 왼다리까지 절단한 그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지, 불운하게도 곧 감염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일은 의료 선진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95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병원에서 당뇨병으로 necrosis가 심해진 환자의 오른다리 절단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병원 직원이 수술 신청 시 실수로 좌우를 바꾸어 기재했는데, 다행히 수술 전날 이를 발견하고 수술실에 전화로 이를 알렸다.

그런데 연락받은 수술실 직원은 전산상의 수술예정표만 수정하고 수술실 입구 게시판은 수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실 입구 게시판을 본 수술실 담당 간호사는 왼다리 절단수술을 준비했고,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와서 수술 준비된 왼다리를 절단하기 시작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수술 시작 후 얼마지 않아 엉뚱한 다리를 절단하고 있음을 의사가 깨달았지만, 이미 근육과 인대를 완전히 절단한 뒤여서 마저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14년간 한 건의 의료사고도 없던 평판 좋았던 외과 전문의는, 사건 수습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의 불운까지 더해져, 의사면허 무기한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비등한 여론 때문에, 미국 의사협회는 준비하고 있던 전국환자안전재단(National Patient Safety Foundation)을 서둘러 출범시키게 되었다.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중증외상환자가 응급실 4곳을 돌다가 사망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직후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해당 병원들에 대한 행정조사에 착수했고, 해당 병원들에 과태료 행정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해당 환자를 첫 번째로 진료한 2차의료기관 응급실 소속 응급의학과 전공의 A를 기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시 해당 전공의는 환자의 안정적 활력징후, 명료한 의식상태, 개방성 골절이나 심각한 출혈의 부재, 자살 시도가 의심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정신의학적 치료의 필요성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전원시켰다. 당시 해당 환자는 추락에 따른 골반뼈 골절에 의한 내부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사후적으로’ 추정되었는데, 추락 후 2~3시간만에 이송 중 사망했다.

의료계는 사망한 환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도, 행정처분을 내린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전공의를 처벌하려는 경찰에 대해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사건이 발생한 구조적이고 본질적 원인은 도외시한 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최일선  기관과 실무자만 처벌하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먼저 당시 파악 가능한 환자 상태를 바탕으로 외상에 의한 중증도보다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다고 본 전공의의 의학적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응급상황에서의 제한적 정보에 기초한 의사의 진단에 ‘합리적 의심 없이’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리임은 비전문가인 경찰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당장의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면피성 송치’를 진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는 ‘공공의료’(이전 정부), ‘필수의료’(이번 정부)를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그 구체적 구현을 위한 논의에서는 ‘엉뚱한 다리’를 더듬고 있다. 첫째 수익성을 고려할 수 없는/고려해서도 안 되는 공공의료/필수의료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있는 극히 불합리한 수가제도, 둘째 최선을 다해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악결과에 대한 형사상 책임 앞에 의료진을 방치하고 있는 법제도의 개선은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서, 주술처럼 ‘공공의대’(이전 정부), ‘의대 증원’(이번 정부)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수가제도 개선을 미루면서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하므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변명하지만, 바로 그런 것을 하라고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부와 국회를 구성해 준 것이다. 법제도 개선을 미루면서 ‘다른 나라에는 의료진을 형사면책하는 입법례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는 의료진에 대한 형사고소가 우리나라의 수십분의 1 내지 수백분의 1이니 불필요하여 없는 것이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세계 최초로 입법하면서, 이것은 왜 그리 주저하는가.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응급실의 수용거부로 인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송구하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응급의료인 개인의 ‘수용거부’가 아닌, 대한민국 응급의료시스템 전체의 ‘수용불가’ 사건이다. 아무런 구조적 문제가 없음에도 응급의료인의 개인적 일탈로 인해 무고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아니다. 제도적 결함을 개인적 일탈로 돌려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는 의료진의 사명감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은 지 오래다. 그래서 의료계는 다시 한번 ‘응급실 뺑뺑이’의 본질적 원인을 해소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면서, 엉뚱한 다리를 절단하려 드는 수사기관에 몇 번이고 외친다. “그 다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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