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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전공의 피의자 조사···제2의 이대 목동병원 사태 우려"
"응급실 전공의 피의자 조사···제2의 이대 목동병원 사태 우려"
  • 조준경 기자
  • 승인 2023.07.0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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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불합리
현장 전공의들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 확산 경고

경찰이 지난 3월 대구에서 응급실을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한 것과 관련, 최초 방문 병원 전공의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조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응급의료 붕괴 위기 긴급기자회견'을 3일 오후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이번 A전공의 경찰 조사에 대해 “의료계는 제2의 이대 목동병원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라며 이대 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이 급감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이번 사건이 응급의학과 지원율 급락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지적이다.

사건 개요를 살펴보면, 환자가 A전공의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에 왔을 때 의식이 명료했고 활력 징후도 정상이었으며 골절이나 출혈도 없었다. A전공의는 환자가 자살시도를 했던 점을 듣고 정신의학적 위험성을 높이보고 전원 조치를 했다. 해당 병원에는 폐쇄병동이나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면 책임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필수 회장은 “전공의가 의학적으로 필요한 조치와 적법한 전원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라며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그 원인을 잘못 진단해 개별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대처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태에 강한 비판과 함께 깊은 우려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이번 응급의료 문제가 발생한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응급실 과밀화'를 꼽는다. 현재 중증환자를 담당하고 치료해야할 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걸어 들어오는 경증환자가 넘치고 있다. 정작 응급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또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해당 전문과목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의 적정 이송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이에 따라 최종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전원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의협은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에서 사건이 기인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한 명의 전공의에게 지우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며 “선의의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에 대해 책임소재 추궁, 피의자 조사, 형사처벌 등이 뒤따른다면 의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응급의학과 전공의 사이에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응급의료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지금 필수의료 전반에 대해서 기피 현상이 심화가 되고 있다”라며 “전공의의 경우, 주당 100시간에 육박하는 근로 시간과 부족한 보상 체계, 이와 더불어서 무과실 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위험 속에서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과거 이대 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의료진에 대한 처벌과 비슷하게 앞으로 필수의료 행위를 했을 때 과연 보호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라며 “전공의는 전문의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의료행위를 하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전공의가 어떤 지위에 있으며,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책임만 종용하는 필수의료를 앞으로 수련하는 게 정말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응급의학과를 하려는 사람은 중증환자를 살리고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에 보람을 느껴서 지원했다. 단지 편한 것을 쫓았다면 다른 것을 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여러 정책들이 이들에게 필수의료를 하지 말라며 떠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볼 때 우리가 배워왔고 수련 받은 환자에게 제일 도움이 되는 수백 번의 판단을 한다. 그 모든 판단이 100% 옳을 수는 없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그 행위가 경찰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형민 회장은 “코에 레고 조각이 들어가도 일가족 4명이 119를 타고 응급실에 온다. 이런 상황에서 경증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지난 20년간 시정되지 않았던 일을 단지 법 조항 한두 개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리 만무하다. 응급의학과 의사를 늘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만두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영 대한응급의학회 정책이사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고 복지부 차원에서 조사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복지부는 개인에게 책임은 없고 시스템적인 문제로 사건이 발생했다고 봤으며, 개선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에 들어간 수사기관은 그 결과가 전문가 단체인 복지부와 차이가 없다면, 빠른 결론을 내려줘야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료진의 동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석 단체들은 이날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A전공의에 대한 피의자 조사 즉각 중단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지역완결적 최종치료 여건 조성 위한 응급의료 인프라 구축과 응급의료기관 보상안 강구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 자제 등 응급의료 전달체계 합리적 개편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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