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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과 의사도 부족한데 중증 필수의약품까지 부족”
“소청과 의사도 부족한데 중증 필수의약품까지 부족”
  • 배준열 기자
  • 승인 2023.06.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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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도 있는 약 우리나라엔 없어···현재 품절된 품목만 47개
제약사 “수입 안 돼”, “생산 계획 없다”···전 세계 최저 약가 때문?
아동병원협 “환자 고통 방치해선 안돼, 정부 차원 대책 마련 촉구”

소아 진료전달체계에서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아동병원이 가뜩이나 전문의도 구하기 어려운 마당에 소아·청소년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까지 부족해 진료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아동병원협회(회장 박양동, 창원 서울패밀리병원장)는 20일 오전 10시 대한병원협회 13층 소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과 필수의약품 품절 실태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아동병원협회가 전국의 44개 아동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현재 품절 사태를 겪고 있는 필수의약품 개수는 무려 47개에 달해 소아·청소년 치료에 치명적인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품절 상태인 대표적인 중증질환 필수약은  뇌전증 발작 억제 유지약(데파코트 스프링클제형 및  파이콤파 현탁액), 터너증후군 치료제(프레미나정), 성조숙증 필수 진단 시약(렐레팍트 LH-RH 고나도렐린아세트산염), 성조숙증 치료 주사약, 소아청소년 천식 치료제, 항생제, 독감 치료제, 항히스타민제, 콧물약, 진해거담제, 해열제, 장염 지사제 등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표적인 감기약인 동아제약의 ‘챔프시럽‘과 대원제약의 ’콜대원키즈펜시럽‘ 등이 잠정 제조·판매 중지돼 아세트아미노펜 시럽제를 구하는 게 어려워진 것에 더해 뇌전증약, 성조숙증약까지 부족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최용재 협회 부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은 “무엇보다 소아 중증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약들이 품절돼 환자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렐레팍트 같은 뇌하수체 성선자극 검사 시약은 1년째 품절이며, 선천 기형이나 수술 후 뇌하수체 기능 저하증 확진에 필요한 약도 없어서 치료 결정조차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최 부회장은 “필수약품들이 계속 품절 상태인 이유가 (상대적으로 약자인) 희귀질환·어린이 환자 대상 약품이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소수 환자라서 이같이 방치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정말 잔인한 나라이며, 또 돈이 없어서 수입을 못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를 과연 OECD 의료 선진국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관계자들에 따르면 의원, 아동병원 등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모든 소아·청소년 의료 현장은 필수약 품절 사태로 인해 ‘아비규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홍준 협회 정책이사(김포 아이제일병원장)는 “제대로 된 감기약도 없어서 당장 앞으로 다가올 가을,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걱정”이라며 “의료진과 부모들은 오늘도 품절된 처방약들을 구하기 위해 약국에 계속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품절 때마다 겪는 코드 변경, 도매상 연락, 길어지는 조제 시간, 이로 인한 보호자들의 불평 등은 이제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소아·청소년 필수 의약품이 수급이 되지 않음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제조사나 공급사에 문의해도 “수입이 되지 않는다”거나 “생산 계획이 없다”라는 등의 해명뿐이고 무엇보다 정부도 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홍준 이사는 “품절사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왜 소아·청소년 필수약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손을 놓고 있는지 원망스럽다”며 “혹시 소아청소년 치료를 포기한 것이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소아 청소년 필수 의약품 품절 사태로 인해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일선 약국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박소현 새고은 메디컬약국 약국장은 “최근 약국가도 품절 사태로 인해 소아·어린이 환자에게 다빈도로 처방되는 항생제, 해열제, 변비약 등을 정상적으로 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매일 제약사와 도매상 담당자에게 품절약의 수급을 문의하며 사정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ETC)뿐만 아니라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약(OTC)도 수급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소현 약국장은 “최근엔 일반약 해열제까지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환자들에게 약이 없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원료약 수급이 어렵고 약가 문제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처방할 약조차도 부족하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의약품 생산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아청소년 필수 의약품 품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정부가 약가 책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최용재 부회장은 “동남아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나온 지 40년 된 약도 우리나라에선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는 출산율이 높은 동남아에 비해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낮고,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 약가가 전 세계 최저 수준이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 수익이 남지 않아 더 이상 약을 수입하지도, 생산하지도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동병원협회는 “더 이상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고통을 방치해선 안된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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