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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17)
[칼럼] 서울시의사회 황규석 부회장의 쉽게 쓰는 건보 이야기(17)
  • 의사신문
  • 승인 2023.06.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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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석 서울시의사회 총무·법제부회장(옴므앤팜므 성형외과의원 원장)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의 진행 과정과 문제점’

※우리나라 공보험 제도의 역사는 한 마디로 규제의 강화라는 도전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의료계 응전의 역사이다.

쉬운 건보 이야기 17번째 이야기로 이번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의 진행 과정과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 이용료와 건강보험 보장 내역 중 본인 부담금을 보장해주는 보험으로, 지난해 3월 말 기준 3977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21년 실손보험 지급액은 10조 5959억 원, 지난해에는 10조 93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함으로써 2년 연속으로 1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명분으로 보험사에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할 것을 권고한 이후, 정부와 민간 보험사에서는 “청구 절차가 불편하여 받지 못하고 있는 3000여억 원의 보험금을 환자들에게 돌려주는 환자를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14년 동안 꾸준히 제정을 촉구했으나, 동 법안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과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계속 계류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21대 국회에서는 총 6건이 발의되어 이번 의협 집행부에서는 지난해 7월28일 보다 더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대응 TF’(위원장 : 이정근 상근 부회장)를 구성하여 대응했지만, 지난 5월16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본 법안이 여야 합의로 의결됨으로써 입법 7부 능선을 넘게 됐습니다. 

이에 지난 5월16일에는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산하 23개 개원의사회에서 ‘실손 간소화법 추진 규탄 긴급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고, 이날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재벌 보험사의 횡포”라며 실손 간소화법 추진을 강력히 비판했으며,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17일 공동 성명을 통해 “향후 보험금 지급 거절 등 오히려 국민의 피해가 예상되는 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해 우려스럽다”라며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보험사가 축적한 개인의료정보를 바탕으로 보험금 지급 거절, 보험가입 및 갱신 거절, 갱신 시 보험료 인상 등의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짐으로써, 국민은 손해를 보게 되지만 대형 보험사들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기게 되고, 요양 기관은 국민의 건강 정보를 보험사에 전달하여야 하는 부당한 의무만을 강요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 자료전송을 위해 ‘중계기관’이라는 중간단계를 설치하려는 것으로서 실손 간소화 중계기관으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보험개발원 등이 거론됐습니다. 심평원은 수십 년간 집적한 데이터는 물론 보험사와 병·의원 간 전산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라서 가장 강력한 후보였지만, 정부 기관인 심평원이 민간 보험사의 업무를 대행하는 문제 이외에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후보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보험개발원은 전산 시스템의 구축 등 여러 가지 제한점이 존재하는 상황이지만 금융당국은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개발원은 그동안 중계기관으로 언급되는 기관이 아니었지만 지난 2월부터 갑자기 유력 기관으로 떠올랐으며,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여당은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 대안으로 제안했고 보험업계는 심평원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계는 보험사는 중계기관을 통해 습득한 의료정보와 환자 데이터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게 되고, 의료기관에는 부담만 증가하는 등의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으며, 만일 꼭 시행해야 한다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정보만을 담은 서식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환자 정보를 최소화한 서식을 만들어 이를 중계기관 없이 의료기관에서 보험사로 직접 보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꼭 중계기관을 두어야 한다면 중계기관을 굳이 따로 두지 말고 각 의료단체에서 직접 중계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환자의 의료정보 보호를 위한 객관적인 기관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의협이 새로운 의료정보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게 되고, 경제적 자립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계기관 설립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모든 권한은 의협에 귀속됨으로써 기관 운영의 투명성 제고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중계기관의 설치 문제 및 시스템 운영을 위해 의료계와 보험사 동수로 구성하기로 한 위원회 설치 문제 등 여러 가지 현안의 해결을 위해 구성된 ‘디지털 플랫폼 정부위원회’를 통해 의료계와 정부가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는 상황에서, 국회 정무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것은 아직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의료기관이 환자의 보험금 청구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는 강제조항은 가장 심각한 문제 조항으로, 실손보험의 실제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을 의무사항으로 강제하는 것은 동 법이 가진 가장 부당한 독소조항입니다.

이외에도 지난 15일에는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한국폐섬유화증 환우회·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자 모임·한국다발골수종 환우회 등 환자 단체가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손 간소화는 가입자의 편익보다 보험사 배만 불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진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의료노조 역시 지난 5월31일 성명을 내고 “본 법안의 본질은 민간 보험사가 환자의 진료 정보를 전자적 형태로 받아 축적하고 이를 이용해 개인을 특정하려는 것으로 절대 반대한다”라고 선언했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도 개정안에 대해 ‘개인 건강 정보 약탈 간소화법’이라며 반발하였듯이, 의료계 뿐만이 아니라 환자와 시민단체까지도 국민의 진료내역이 민간 보험사로 넘어가서 상업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돌아볼 때 동 법의 입법 취지로 강조하고 있는 ‘순간의 편익’보다 ‘환자의 진료 정보 보호’가 더 중요하며, 일부 재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청구 간소화 법은 결코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향후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등 이후 과정과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국민의 진료 정보 보호와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국민편의를 실질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진정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함께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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