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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병원 수익 20%만 가져간 의료법인…法 "환수금액 25% 감액은 위법"
사무장병원 수익 20%만 가져간 의료법인…法 "환수금액 25% 감액은 위법"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6.02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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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분사유는 인정… 감액·조정 환수금액 과도해 재량권 일탈·남용"

비(非)의료인과 동업약정을 체결하고 건강검진실을 운영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검진비용 전액이 아닌 25%를 감액해 환수처분을 내렸지만, 이 역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환수처분 사유는 인정되지만, 25% 줄인 환수금액도 책임에 비해 지나치게 커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이유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 부장판사)는 A의료법인이 "26억여원의 부당이득 징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법인 산하 B병원은 건강검진 실시기관 지정 병원으로 종합건강검진실을 운영해왔다. 공단은 지난 2014년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는 비의료인 C씨에게 건강검진실을 개설·운영하게 해놓고 건강검진실을 직접 운영하는 것처럼 비용을 청구해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2010년 6월~2014년 7월까지 건강검진 비용 36억여원을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A법인은 "건강검진비용 전액 환수는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2020년 6월 대법원이 "이른바 '사무장 병원' 개설명의인에 대한 일률적인 요양급여비용 전액 환수는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대법원은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 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법리에 따라 A법인의 상고심에서도 당초 2심 판결이 파기됐다. 이후 파기환송심은 "A법인이 C씨와 건강검진실 운영을 위한 동업약정을 체결하고 운영수익을 2(A법인) 대 8(C씨)로 나눠 가졌다고 봐야 한다"며 "환수처분 사유는 인정되나 건강검진비용 전액 환수는 비례의 원칙에 위반돼 위법하다"며 환수처분을 취소했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공단은 2021년 1월 ‘불법개설요양기관 환수결정액 감액·조정 업무처리지침’을 만들어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환수금액을 40%까지 감액·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공단은 'A법인이 비의료인인 C씨에게 건강검진실을 위탁·운영하게 했다'는 이유로 2021년 3월 다시 35억여원의 건강검진비용을 환수해야 한다고 통보했고, 보험급여심의위원회를 거쳐 새로 마련한 지침을 근거로 A법인에 대한 건강검진비용 환수금액을 26억여원으로 25% 줄였다. 

그러나 A법인은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거나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며 다시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A법인은 "건강검진실에서는 면허자격을 갖춘 의료인에 의해 적법한 건강검진이 이뤄져 건강검진비용 전액을 부당하게 얻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병원 개설·운영을 모두 비의료인이 주도해 보험급여비용을 지급받는 전형적인 사무장 병원 방식의 의도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매출액의 20%만 귀속돼 실제 취득한 순이익은 적었는데도 건강검진비용 25% 감액에 그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처분사유는 인정되나, 감액·조정된 환수금액이 지나치게 과도해 비례의 원칙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돼야 한다"며 A법인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선 "A법인에 지급된 건강검진비용은 비의료인이 의료인과 동업으로 개설한 요양기관에 지급된 보험급여비용으로 부당이득 징수처분 대상이 된다"며 "처분사유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2020년 대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A법인이 받은 건강검진비용 총액 중 25%만을 감액한 공단의 처분은 업무처리지침에 근거한 것이긴 하나, 의무 위반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해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단의 처분은 사무장 병원이 취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는데 본질이 있는 반면, 공단이 마련한 업무처리지침은 사무장 병원의 불법에 대한 ’제재‘에 초점을 맞춰 부당이득에 관한 요소 중 가장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할 ’요양급여내용(불법·부당청구 등 여부)‘의 감액비율 한도를 2%로 제한했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는 별도의 독립적인 요소로 고려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공단의 업무처리지침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당 이득 환수'라는 본질에도 맞지 않아 객관적인 합리성을 결여했다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다.

특히 "사무장 병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지급된 보험급여비용을 전액 환수하게 될 경우, 어차피 가입자 등이 정상적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급됐어야 할 보험급여비용이라는 측면을 감안하면 국가가 사실상 초과 이득을 얻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공단이 감액·조정에 관한 재량권을 행사할 때 사무장 병원이 지급받은 보험급여비용에서 가입자 등을 진료·검진함에 따라 지출하게 된 인적·물적비용 등 제반 비용을 공제해 취득한 ’순이익‘도 아울러 고려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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