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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괌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기자수첩] 괌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5.3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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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괌에 ‘슈퍼 태풍’ 마와르가 덮치면서 한국인 관광객 3000여명의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처님 오신 날 연휴를 앞두고 괌을 방문했다가 현지를 강타한 태풍에 우리 관광객들은 단수와 단전으로 인한 어려움은 물론, 당뇨약·혈압약 등 상시 복용해야 하는 약이 떨어져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9일부터는 공항 운영이 재개돼 하나 둘씩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500~1000달러에 달하는 높은 의료비용 때문에 현지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다"는 관광객들의 호소에 우리 정부가 현지에서 '한인 의사'를 찾아 나선 상황도 전해졌다.

“괌 의료기관의 진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현지 한인 의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외교부의 인터뷰 내용은 참 흥미로웠다. 마치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싸게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듯한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우리나라 의료진들은 저마다 SNS를 통해 “한인 의사를 찾는다고, 미국에 있는 한인 의사가 10달러에 진료를 해 주겠느냐”, “K-의료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 “해외에 나가면, 한국 만큼 좋은 의료 혜택이 없다”, “한국 와서 진료비 1000원 비싸게 나와도 과잉진료라 떠든다”, “미국 의사는 참의사, 한국 의사는 돈독이 오른 속물로 본다”는 등 자조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한민국 의료는 전 세계가 인정할 만큼,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하지만 '진료비는 매우 저렴'하다. 감기 진료비의 환자 본인 부담금은 5000원 내외다. 환자들은 낮은 진료실 문턱 덕분에 동네 의원은 물론, 대학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이용하고 있다. ‘의료쇼핑’을 하는 환자까지 나올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낮은 진료비조차 ‘비싸다’며 늘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게 다반사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 보면, “초진 진료비라고 9000원을 내라는데 너무 비싸서 놀랐다”거나 “눈알 몇 번 뒤집었는데 안과 진료비 8000원이 실화인가요” 등의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최근엔 소아 환자의 부모가 "의사가 가슴이 나오는 시기인 5살 딸의 윗옷을 올려 청진을 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사례도 나왔다. 의사가 아이의 귀지를 떼다 피가 났다며 소송을 건 사건도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는 붕괴된 지 오래다. 앞서 지난 3월 대구에서 상태가 위중하던 10대 학생이 2시간 넘게 구급차를 타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환자 수용을 거부한 응급의료기관 4곳에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게다가 정부는 '의사면허박탈법'과 '수술실 CCTV 의무화법' 등 규제 강화를 통해 의사들을 옥죄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를 늘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의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높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자녀만큼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수가 협상도 마찬가지다. 정부기관은 약 3조6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흑자 달성에도 불구하고 '저수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료계의 호소에 '내년도 수가 인상으로 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의료계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번 괌 사태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진료비가 매우 저렴하다는 사실이 자명하게 드러났지만, 정부는 의료계에 박하게 굴고 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의료는 서서히 죽어 간다. 법과 제도로 부당한 요구와 압박을 이어가면 그 속은 곪아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괌 사태를 통해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과 의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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