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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시술 무제한 지원, 저출생 해법 아냐···‘생식력 보존’ 도와야”
“난임시술 무제한 지원, 저출생 해법 아냐···‘생식력 보존’ 도와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5.19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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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 개소 5주년 정책 심포지엄 개최
최안나 센터장 “45세 이상은 건보 제외하고 정액제 맞춤 지원해야”
이수형 연구위원 “비용 지원보다 ‘전생애적 생식건강 증진’이 중요”

우리나라 난임지원 정책이 오히려 저출생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험관 아기 출생 비율이 상승하는 것은 전체 출생 감소에 따른 착시일 뿐 정책 효과라고 볼 수 없으며, 나이와 횟수에 큰 제한 없이 난임시술을 지원하는 현재 정책은 아직 출산을 하지 않은 가임기 여성들에게 ‘언제까지라도 출산을 미뤄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은 19일 열린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 개소 5주년 기념 정책 심포지엄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최 센터장은 “가임연령은 의학적으로 44세까지고, 45세 이상부터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난임지원을 양적으로만 확대한 정책은 젊은 세대가 임신을 미루는 데에 영향을 주고, 이로써 난임위험군이 늘어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령에 따른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34세 이하 저위험임신군의 난임 예방 및 임신·출산·난임 관련 진료비 본인부담률은 아예 면제해주고, 40세 이상에게는 배아 입양 기회를 제공, 45세 이상은 건보 지원을 하지 않고 난임시술비를 정액 지원해 일괄적인 시술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맞춤형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미혼 청년들을 위한 난임 예방정책도 시급하다. 질병 사유로 필요한 의학적 정자·난자 냉동 등 가임력을 보존하는 시술을 급여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현재의 난임지원 정책은 의학적 기준보다 저출생과 출산 연령 지연 등 사회적 요구에 따라 건강보험과 국고, 양쪽으로 산재되어 확장된 경향이 있다”며 “이중 지원 체계로 난임환자들의 혼란과 재정의 중복 지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센터장이 시술 성공 가능성에 따라 지원을 다르게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반복적인 시술 실패가 난임여성의 우울증과 가정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 센터장은 “센터에서 낸 상담 통계 결과, 시험관 시술을 3회 이상 받으면 여성의 우울 정도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유럽불임학회에서는 난임시술이 신체적 위험보다 정신적 위험이 높은 시술이라고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며 “우리 센터의 목표는 출생률 증가가 아니라 임신 실패를 겪은 가정이 해체되지 않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시술 지원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획일적인 정책을 지양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이 위원은 “고위험 난임여성일수록 저체중아, 조산,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등 위험이 높다. 시술 여성의 건강을 고려해 정책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며 “생식력 유지와 보존을 장려하고,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전생애적인 생식건강 증진을 의제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은 “난임에 대한 독립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며 “출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든 아이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원의를 존중받을 수 있는 인간 기본권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중앙난임·우울증센터에 대한 국가 지원이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권역센터는 전국 6개 시도에만 설치되어 있고, 기초지자체에서는 난임사업 전담팀도 구성하지 못한 채로 업무를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앙센터는 과도하게 몰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정책 개발과 전국 센터 평가 관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장은 “치매관리사업은 중앙-광역-지역센터 간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는 극소수 인원으로 중앙과 서울권역 센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며 “서울권역 난임센터가 개소 예정임에 따라 중앙센터는 난임 문제 관리모델 개발, 정책 개발, 교육훈련, 인력양성 등 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난임 예방을 위해 임신을 준비하는 국민들에게 가임력 검사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이 내년부터 도입되고, 2026년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라며 “건보재정은 전국민 각출기금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잘 구분해서 써야 한다. 우선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필연적으로 많아지는 미숙아, 고위험 영유아에 대한 건강 정책도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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