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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편리함에 앞서는 가치
[기자수첩]편리함에 앞서는 가치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5.16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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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6월 1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달 안으로 계획 수립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같은 날 코로나19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로 하향되면서 하루아침에 비대면진료가 불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인데, 그 취지가 단순히 플랫폼 사업을 살리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우선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월 9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비대면진료 제도화 원칙에 대해 합의했다. 그 골자는 대면진료·재진·의원급 중심, 비대면진료 전담 의료기관 금지다.

그런데 복지부는 지난 10일 정부 합동 브리핑을 통해 비대면진료 대상환자 범위를 어디까지 할 지 전문가, 관계기관, 여야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진료 당사자인 의료계와 이미 합의를 끝낸 사안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번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이 지난 4월 18일 비대면 진료 입법을 위해 개최한 긴급 토론회에서는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보장해야 된다는 논리였다. 토론에 참석한 한 전문의는 비대면진료 환자의 99% 경증이고, 현재 초재진 분류 기준은 단순 기계적이어서 의료 현장에서는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증환자라면 굳이 초진을 대면으로 해야 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내과의사회는 미국 4000만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적 조사연구에서 급성기 질환의 원격진료 시 대면진료에 비해 응급실 내원, 입원 위험도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고 반박했다. 즉,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대면진료 도입 초기 단계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조사 결과가 전무하다. 그간 비대면진료를 받아온 환자들 중 증상 악화를 겪은 환자가 몇 퍼센트인지,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한 환자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복지부는 한시적 비대면진료의 성과만을 부각시켰다.

의사는 비대면진료 시 두통, 발열, 기침 등 호흡기 증상, 복통, 요통 등 비특이적 증상에 대해 촉진이나 청진 없이 환자의 진술에 따라서만 진료해야 한다. 이 증상들이 단순 경증에 그칠 것이라는 보장이 없음은 물론, 비대면 진료 후 증상 악화 시 의사 책임 범위를 규정하는 내용도 발표된 바가 없다.

또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4월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은 격오지 감염병환자, 노인,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 이용자 비율은 농어촌보다 대도시에서, 고령층보다 3~40대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다소 극단적으로 해석하자면 비대면진료의 효용성은 직장인들이 병원 갈 시간을 내는 번거로움을 더는 정도에 그쳤다고도 해석 가능하다.

정말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정부는 플랫폼 업체들에게 디지털 약자를 위한 이용 가이드라인을 단 한 번이라도 요구한 적이 있어야 했다. 복지부도 그들의 곁에 언제나 스마트폰을 들어 플랫폼 어플을 설치해주고, 의사와 소통을 대신해 줄 보호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대면진료 초진을 허용하면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넓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아 비대면진료는 아동학대 징조 발견에 있어서도 한계가 생긴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플랫폼 업계는 환자의 건강보다는 코로나 환자 감소에 따른 이용률 하락분을 상쇄하면서 시장 확대까지 도모하고자 초진 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부는 그 요구에 오히려 호응하고 있다. 대통령 미국 순방 일정에 약사법 위반으로 수사 중에 있는 플랫폼 업체 대표를 동행하면서까지 말이다.

어린이보호구역 속도를 20km까지 낮추자는 목소리, 점점 까다로워지는 분리수거 방법. 극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 속에서도 조금 더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 편리함에 앞서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산업 발전이 국민의 건강과 맞바꿀만한 가치일까?

복지부가 또 다시 의료계와의 합의를 저버리고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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