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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그리고 간호법 파동
나이팅게일, 그리고 간호법 파동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3.05.09 10:14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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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2)

‘크리미안콩고출혈열’이라는 병이 있다. 크리미할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치명률이 4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그리고 조금 과장한다면, 현재 대한민국 보건의료계의 대혼란은 이 병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한다. 영국/프랑스/오스만 제국과 러시아가 맞붙은 이 전쟁에는 전쟁사적으로 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작렬탄(폭발하여 파편으로 적을 살상하는 포탄), 철도, 철갑선 등 현대 기술이 활용된 최초의 전쟁이다. 둘째 사진, 전보 등이 발명되었고 종군기자가 활약하여 국민들이 사진과 기사로 전쟁 상황을 생생히 알 수 있게 된 최초의 전쟁이다. 셋째 군대 위생과 의료의 중요성이 재인식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는 3년만에 75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기병대의 돌격”으로 표상되는 지휘관들의 무능함으로 인한 전투 사상자도 많았지만, 군대 위생 관리의 부재, 열악한 보급, 그로 인한 영양 부족, 부상병 치료 체계의 부재 등에 따른 비전투 사상자가 훨씬 많았다. 적의 총알이나 포탄에 1명의 병사가 죽을 때, 발진티푸스나 콜레라와 같은 감염병으로 3명의 병사가 죽었다. 특히 크리미안콩고출혈열은 당시 감염경로나 원인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던 무서운 병이었다.

이런 상황을 접한 영국 군부는 고민에 빠졌다. 당연히 군의관의 추가 파견이 필요했으나, 인력 확보가 어려웠고 단기간에 인력 양성도 어려웠다. 고심 끝에 대안으로 31세에야 간호사 실습을 시작했고 4년 경력밖에 되지 않은 런던 부인병원 간호부장에게 간호대를 꾸려 활동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이를 승낙하고, 38명의 성공회 수녀들을 데리고 이스탄불에 있는 영국군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바로 나이팅게일이다.
  
그녀는 탁월한 의료인이었다기보다는, 개혁적 관리자이자 저돌적 사회활동가였다. 부유층 출신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군대 내 폐습과 싸웠고, 위생 관리를 강조하는 자신의 간호 철학을 행정적으로 관철했다.
  
운 좋게도, 감염병의 대창궐로 군대 위생과 의료의 중요성이 재인식된 시기였다. 그리고 더욱 운 좋게도, 최초의 종군기자가 그녀가 일하는 병원을 방문하여 그녀의 활약상을 사진과 기사로 알림으로써, 엄청난 전쟁 사상자 수에 충격받고 무언가 희망이 필요했던 영국 국민들에게 그녀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 영웅이 되었다.
  
종군기자는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밤마다 등불을 들고 병원을 돌아다니곤 했던 그녀를 ‘등불을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전쟁 영웅이 필요했던 당시 상황과 결합하여 이는 헌신의 상징적 표현이 되었다. 참고로 ‘백의의 천사’는 한국에서만 쓰는 출처 불명의 표현이며, 그녀는 항상 짙은 색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에서 활동한 기간은 1년 반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크림 전쟁 중 지역 풍토병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평생동안 침대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강단 있고 저돌적인 그녀는 크림 전쟁에서 얻게 된 유명세를 적극 이용했다. 그녀는 기부금을 받아 간호학교를 설립했으며, 보건 관련 법률 제정을 주장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다가 90세에 사망한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크림 반도에 욕심내지 않았다면, 크림 전쟁에서 크리미안콩고출혈열 같은 미지의 감염병이 창궐하지 않았다면, 나이팅게일이라는 전쟁 영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근대적 의미의 간호 개념도 정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150년 후 대한민국 보건의료계의 대혼란도 없었을 것이다.
  
국회는 지난달 27일 간호법 제정법률안을 의결했고, 이는 지난 4일 정부로 이송되었다. 업무 범위가 전혀 다른 13개 보건의료단체가 단결하여 하나의 법안에 반대하는 것도, 의료계가 극렬한 찬반으로 대쪽처럼 둘로 쪼개진 것도,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공개적으로 우려 입장을 표시한 것도 모두 사상 초유의 일이다. 회원이 350만 명에 이르는 13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국회 의결에 대한 항의의 의사 표시로 부분파업을 단행했고, 법안이 공포되는 경우 전면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일개 법률안이 대한민국 보건의료계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는 현재 상황을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실로 ‘간호법 파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호학 관련 서적에서는 간호가 원시 시대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것처럼 기술한다. 하지만 원시 시대와 고대의 간호는 가족이나 친척이 아플 때 서로 돌봐주는 것을 지칭했다는 점에서 ‘개호’에 해당한다. 중세 이후에는 지역의 빈민과 고아들을 돌보는 행위를 간호로 지칭하고 있으나 이는 구호사업으로서 ‘복지’에 해당한다. 또한 (개호와 복지를 제외하고) 근대 이후에 간호로 지칭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치료 목적, 즉 환자의 건강 개선 목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는 본질적으로 ‘의료’에 해당한다. 다만 의사가 항상 부족했고 의료 시스템이 체계화되기 전이었으므로 간호가 의료의 일부를 담당했던 것뿐이다. 간호는 개호와 다르고, 복지와도 다르며, 본질적 의미의 간호는 의료의 일부이며 이는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간호법 제정은 현행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제도를 본질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더 쉽게 말하여, 간호사가 의사로부터 ‘독립’하여 환자를 ‘진료’하겠다는 시도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제도 변경에 과연 동의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변경이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 보호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가?
  
16일 국무회의에서는 간호법 제정법률안에 대한 국회에의 재의요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디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피해가 없도록, 국무회의에서 이 ‘간호법 파동’을 종식시킬 수 있는 상식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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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2023-05-10 14:11:08
백배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태훈 2023-05-10 14:04: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승헌 2023-05-10 14:01:03
시의 적절한 논평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의료를 이리도 분열 시키는 것이 누굴 위한 것 일지요 . 귀한 글 감사합니다

최주현 2023-05-10 14:00:08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김철 2023-05-10 13:59:12
16일 국무회의에서는 간호법 제정법률안에 대한 국회에의 재의요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디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피해가 없도록, 국무회의에서 이 ‘간호법 파동’을 종식시킬 수 있는 상식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네..대통령실이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에만 관심이 있는 간호협회와 일부 정치 간호사들의 최후의 저항에 흔들리지 않고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는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길 고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