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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9] 자동차보험, 한방, 그리고 의료자원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9] 자동차보험, 한방, 그리고 의료자원
  • 의사신문
  • 승인 2023.03.2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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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2021년 기준 자동차보험 진료비는 모두 2조 3916억원인데 이 중 한방진료비가 1조3066억원(54.6%)를 차지하였다. 병원진료비는 1조850억원으로 이 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병원진료비는 대개 중상 외상 환자에 대한 수술과 입원비 등이 포함되었을 것이고 한방진료비는 대개 경상 환자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진료비가 훨씬 더 많은데 이는 2020년 기준 자동차보험 청구기관이 의원 17.65%, 병원 71.09%인데 비해 한의원은 82.54%, 한방병원은 96.83%인 데서 짐작 가능하다. 즉 한의원이건 한방병원이건 자동차보험은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보험업계는 경상환자 4주 초과 치료시 치료기간이 적힌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쪽으로 자동차보험 약관을 개정하였는데 이에 대해 한의계의 반발이 거세다. 사실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단순 통증은 사고 후 3개월까지 급속하게 감소하며 그 이후 1년 가까이는 작은 통증이 간헐적으로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의계는 ‘어혈’이라는 개념을 적용해서 자신들의 한약, 침, 추나 치료로 이것을 풀어주는 치료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증에 해당하는 1~11급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험금은 1.3조원이었던 2015년부터 2021년의 1.5조원까지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경상에 해당하는 12~14급 피해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2015년의 1.7조원에서 2021년의 3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중증 피해자는 대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경증 환자들은 어디에서 치료를 받았기에 저렇게 치료비가 늘었을까?

얼마 전 이 칼럼에도 썼지만, 필자 역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주위의 권고로 한의원을 방문해본 적이 있다. 반쯤 호기심에서였는데 가 보니 기본 6개월 치료를 권해서 왜 그런 권고를 했는지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물론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이든 자동차보험이든 그것은 내가 소유한 자원이 아니라 공동의 자원이다. 보험의 성격상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작은 돈을 모아 그러한 때를 당한 사람에게 부조를 해 주는 공적 부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자원은 내가 쓰고 싶다고 하여, 내가 쓰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 자유시장 경제에서 내가 내 돈을 내고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면 병의원을 가든, 한의원을 가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받고 싶은 만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공동의 자원은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건강보험은 악명이 높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조직에서 의사가 처방한 치료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늘 감시의 눈을 번득인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새로운 의료기술이라고 의사나 환자가 마음대로 쓸 수도 없다. 

신의료기술에 대해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라는 조직이 그 효능 및 비용 대비 효과(cost effectiveness)를 엄밀히 따져서 효능이 있더라도 어느 수준 아래든지, 비용 대비 효과가 적절하지 않다면 쓰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강제 요양기관 지정과, 자의적인 삭감, 그리고 터무니없는 수가가 문제이긴 하지만 이렇듯 세계적으로 강고한 규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한방에 대해서는 그저 몇 백 년 전의 책에 유사한 것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임상자료 없이 쓸 수 있게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이 한갓 모순으로도 여겨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어지간한 병으로 수술 및 입원을 해도 종합병원 급에서는 2주 이상 입원이 어렵다. 2주 안에 모든 증상에서 완전히 회복될 리 없지만 건강보험공단이 그런 환자를 내보내는 것은 결국 공공의 자원인 건강보험 예산을 절약하기 위함일 것이다. 즉, 어떤 의료제도도 모든 증상이 완전히 깨끗하게 나을 때까지 치료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의계의 주장대로 그들의 침구와 한약이 무슨 어혈을 푸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해도 그 모든 ‘어혈’이 다 풀어질 때까지 침을 맞고 한약을 먹을 수 있게 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정말로 필수적인 치료에서도 연간 보험일수 제한 때문에 제대로 처방을 줄 수 없어 분개해 본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하더라도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보험회사는 ‘한방 불이용 특약’을 하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블랙박스 달고, 연간 주행거리 얼마 이하면 보험료도 할인해 주는데, 사고가 일어나도 적어도 자손에 대해서는 한방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일정액을 할인해 주는 것이다. 

사실 국민건강보험도 분리해서 한방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제발 보험금 좀 깎아주었으면 좋겠지만 이 나라가 당분간 그럴 리는 만무하니 민간 영역인 자동차보험부터 좀 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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