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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사무장병원' 혐의만으로 요양급여 지급보류는 위헌"
헌재, "'사무장병원' 혐의만으로 요양급여 지급보류는 위헌"
  • 홍미현 기자
  • 승인 2023.03.24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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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만장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내년 말까지 개정"
"지급보류 취소 사유나 보상 규정 없어···재산권 침해"

이른바 '사무장병원'에 해당한다는 수사 결과만으로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규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헌재는 23일 A·B의료법인과 대전고법이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은 위헌"이라며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을 즉각 무효화하는 대신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을 말한다. 헌재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의 입법시한을 내년 12월31일까지로 정하고 법 개정 전까지는 효력을 인정하도록 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은 수사 결과 사무장병원이나 이른바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개설 의료기관으로 확인된 요양기관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다. 

A법인은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후 공단이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보류하자 "지급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1심 도중 A법인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1심에서 A법인이 승소하자 공단은 항소했고, 대전고법은 항소심 도중 직권으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B법인 역시 경찰 수사에서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는 혐의가 확인됐다는 이유로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 처분을 받았다. B법인도 "지급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고, 1심 도중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요양급여비용 지급보류 조항이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우선 지급보류 조항 자체에 대해서는 "사후적인 부당이득 환수절차의 한계를 보완하고,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을 방지하고자 마련된 조항"이라며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은 아니라고 봤다.

그러면서 "사무장병원의 개설·운영을 보다 효과적으로 규제해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지급보류 처분의 요건이 상당히 완화돼 있는 것 자체는 일응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헌재는 "지급보류 처분은 잠정적 처분이고, 처분 이후 '사무장병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져 무죄판결의 확정 등 사정변경이 발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정변경 사유가 발생하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지급보류 처분의 ‘처분요건’ 뿐만 아니라 사정변경이 발생할 경우 잠정적인 지급보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에 대해서도 명시적인 규율이 필요하고, 그 ‘취소사유’는 ‘처분요건’과 균형이 맞도록 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하급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에는 그때부터 일정 부분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사정변경 사유가 발생할 경우 지급보류 처분이 취소될 수 있도록 한다면, 이와 함께 지급보류 기간 동안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수인해야 했던 재산권 제한상황에 대한 적절하고 상당한 보상으로서의 이자나 지연손해금의 비율에 대해서도 규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현행법은 이 같은 부분에 대해 어떤 입법적인 규율도 하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결국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다만 헌재는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위헌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지급보류 처분의 취소 사유나 지급보류 처분에 의해 발생한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제한 정도를 완화하기 위한 적절하고 상당한 보상으로서의 이자나 지연손해금 등 제도적 대안 등을 어떤 내용으로 형성할 것인지는 입법자에게 폭넓은 재량이 부여돼 있다"고 헌법불합치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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