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8] 사이비 종교, 그리고 의료행위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8] 사이비 종교, 그리고 의료행위
  • 의사신문
  • 승인 2023.03.14 09: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최근에 몇몇 사이비 종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낳고 있다. 이들 종교단체가 보여주는 엽기적인 비행들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종교를 믿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이들 중에서도 이런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여러 방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어느 나라나 비합리적이고 기이한 것을 믿는 사람들, 혹은 사이비 종교단체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목격하였듯 이러한 종교단체가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정치권에도 개입하여 정부조차 다루기 힘들게 된 경우가 과연 선진국 반열에 든 나라 중에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이비 종교집단들은 기적, 또는 이적을 보여준다며 신도를 끌어 모은다. 그러한 ‘기적’에는 대표적으로 병을 고쳐준다는 주장, 그리고 ‘예언 능력’을 보여준다는 주장이 포함된다. 여기에 공동체를 통한 삶의 위안과 소속감의 부여, 그리고 현세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어떤 ‘구세주’를 신봉하여 삶의 고통을 망각하는 것 또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치유 기적, 또는 ‘병 고침’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할 말이 많다. 사실 한국에는 의사가 아닌 각양각색의 무리들이 치유사(healer)를 자임하고 있다. 그 중 한의사와 같이 제도권에서 법으로 인정받는 이들도 있지만, 그 외에도 기치료, 벌침, 생약초 치료, 자연치료 등등에 종사하는 여러 치료사들이 있으며 직업적으로 이런 일은 하지 않아도 ‘선의에서’ 타인에게 치유행위를 해 준다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다. 게다가 사이비 종교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목사나 승려 등의 종교인들이 병 회복을 비는 기도에 덧붙여 나름의 선의에서 각종 치료 행위들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0%를 상회하여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각종 미신적이고 근거 없는 치료행위가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대학 진학률에 비해 실제 문해력은 여전히 떨어진다는 통계를 보면 고등교육이 별 의미가 없든지 아니면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미신적이고 근거 없는 치료행위, 나아가 그런 것을 내세우는 사이비 종교에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일본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건강포용지수는 세계 6위로 어느 나라보다도 양호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연간 외래 방문 횟수는 14.7회로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주관적 건강상태 평가에서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도 50% 미만으로 미국 등에 비해 크게 낮다. 

한 마디로 한국인은 좋은 의료환경에서 대단히 양호한 건강을 누리지만 스스로 느끼는 만족도는 매우 낮다는 뜻이다. 더 긴 수명, 더 좋은 건강을 바란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일찍이 깨달았듯 인간의 삶이란 결국 생로병사의 고해일 뿐이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모든 고통을 다 없앨 방법은 없다. 적절한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고 심각한 불편이나 통증이 없다면 우리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물론 건강증진을 위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등등 역시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화와 죽음까지 완전히 해결해볼 도리는 없다. 

의료는 적정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모든 문제를 모두가 원하는 수준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일텐데 우리는 자꾸만 그 어딘가에서 더욱 완전하고, 더욱 건강하고, 더욱 행복한 삶을 찾는다. 과학은 우리에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종교는 “기도하면 신은-혹은 신의 재림이라는 현세의 어느 구세주는-너의 모든 소망을 들어주신다”고 설파한다. 

과연 인간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가 진정한 신일까? 오히려 그런 주장을 하는 종교일수록 사이비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의학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으며, 현세의 의료제도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 바꾸든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의료를 제공할 수 없다. 심지어 의료자원이 무한하다 해도 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자명한 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자꾸 문제만 더 생기는 것이다. 의대를 세우고, 의사정원을 늘리면 대한민국 의료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정치인들은 사이비 종교인이나 무당과 다름없다. 

그들의 이면에는 물론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기를 회피하고 어른으로의 성장을 거부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서 사이비 종교들이 횡행하는 이유는 그런 이들의 존재에 기인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