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1:13 (일)
[기자수첩]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기자수첩]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박예지 기자
  • 승인 2023.02.28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2월은 서울시 각구 의사회의 총회철이다. 총회는 1년간의 회무를 마무리하며 회원들이 즐겁게 회포를 풀어야 할 잔칫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올해 각구 총회에서는 결의문이며 투쟁 의지를 밝히는 선언문이 울려퍼졌다.

구청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 등 내빈들은 “잔칫날인 줄 알고 축하드리러 왔더니 회원들의 표정이 어둡다”며 당황스러운 듯 축사를 시작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진 인사말이었을텐데 객석에서는 쓴웃음만 터져나왔다. 내빈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일 때는 더욱 그랬다. 보는 사람이 다 머쓱해지는 장면이었다.

잔칫집 분위기를 망친 주범은 모두 알다시피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다. 장내에는 “끝까지 악법 저지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범의료계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악법들이 바리케이트를 밀치고 지나가는 광경을 뜬눈으로 목도해 온 회원들은 “이제 교통사고만 내도 면허 취소 당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며 서로 허망하게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불현듯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유명한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이 가운데 지난 23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이 대한의사협회 간호법 저지 비상대책위원장에 당선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의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지난 9일 이후 꼬박 2주가 지난 시점이다. 게다가 위원 구성에도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비대위는 3월 무렵에야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수 있다.

국회법상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본회의 직회부를 요구한 법안들은 30일 이내에 여야 대표가 합의를 해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만약 합의가 되지 않으면 30일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부의 여부가 결정된다. 이후에도 여야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면 여당의 건의를 토대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2월 9일로부터 30일이 지난 3월 12일 이후 열리는 본회의에는 언제든 두 법안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명 투표에서 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본회의 통과도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5월 9일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 이달 9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그러했듯 말이다.

또 간호법 제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만큼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를 맡고 있는 한진 변호사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없어보이고 면허 취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점에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여당 일각에서도 간호법 제정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간호법이 여당의 밀어붙이기로 패스트트랙을 탈 것이라는 건 이미 지난해 여러 언론에도 보도됐던 바다. 의협이 좀 더 빠르게 노선을 선회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의원들의 의견 취합도, 민주적인 절차도 중요하다. 그러나 향후 악법 사태에 있어서는 의협 집행부 차원의 신속한 결단과 행동력이 절실해보인다. 내년 총회에서는 회원들이 진심으로 웃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