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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6] 의학의 전통
[권복규 교수의 의료만필(醫療慢筆) 6] 의학의 전통
  • 의사신문
  • 승인 2023.02.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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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규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했던 결혼 25주년 기념 여행을 미루다가 이번에 이탈리아로 다녀오게 되었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전에 가본 적이 없었던 볼로냐였다.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1088년에 설립되었다)이 있는 대학 도시다. 이 대학에는 대학 자체에서 구비한 자연사 및 인류학 박물관이 있는데 이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 상당수는 마르첼로 말피기(Marcello Malpighi, 1628~1694)가 모은 것이다. 말피기는 볼로냐에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한 의사이자 해부학자, 생물학자로 의사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그는 볼로냐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현미경을 본격적으로 의학에 도입하여 현미경 해부학의 아버지란 이름을 얻었다. 

볼로냐 시내에는 또 과거 해부학을 시연하였던 해부학 극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말피기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였던 발살바(Antonio Maria Valsalva, 1666~1723), 그들의 선조 해부학자 유스타키오(Bartolomeus Eustachius 1500~1974) 등의 이름과 업적이 새겨진 명판이 있다. 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주변에 있는 작은 명패들이었는데 유럽 각지에서 그곳에 유학을 왔던 학생들의 이름과 가문, 그리고 그 가문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건물은 실제로 예전에는 해부학 강의실로 쓰였고, 이러한 사업을 여러 교황들이 후원하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조선 사회에서 의사에 대해 그 어떤 존경심을 찾아볼 수 있을까? 조선에서 의사는 그저 ‘중인’에 불과했고, 의과란 제대로 된 과거를 볼 수 없었던 양반의 서자, 혹은 중인 의사의 자식이 보는 시험이었다. 

의과에 합격해도 승진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가장 높은 자리(종1품)까지 올라간 이가 그 유명한 허준인데, 그 역시 문신 관료들의 온갖 음해에 시달려 몇 번이나 귀양을 다녀와야 했다. 그는 잘하면 정1품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사헌부와 사간원의 격렬한 반대로 종1품으로 마쳐야 했다. 조선시대 여러 명사들의 일화를 기록한 책들을 보면 가끔 의사도 등장하기는 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역병이 돌 때 무슨 구휼을 공짜로 해 주었다는 내용이다. 즉 성리학에서 보는 미담의 주인공이라서 실린 것 뿐이다. 의사라는 것은 조선에서는 절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근대의학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의대생이라면 모두 배우는 육안 해부학만 해도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로부터 헨레(Friedrich Gustav Jakob Henle, 1809~1885)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을 통해 지식이 축적되고 또 축적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셀 수도 없는 부검 및 해부가 행해졌고, 그러한 지식은 도판이 있는 책으로 만들어져 후학들에게 전수되었으며, 후학들은 또 자신의 눈으로 본 것과 교과서에 실린 것 사이의 불일치를 찾아내고 개선하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능력으로 절대 불가능하며, 사회가 그 가치를 알고 이해하며 지원함으로써 도달하게 된 축적의 산물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게 조선 어디에라도 있었나! 허준이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이 TV 드라마를 통해 마치 사실인 양 통용되는 것이 이 나라의 수준이다. 대학과 같이 그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 평생을 학문 연구에 바친 이들의 노력, 또 그러한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고 지원해주는 사회, 이러한 것들이 결합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의학의 놀라운 성과가 가능해진 것이다. 전통의학에 이러한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솔직히 우리 의학은 서양에서 수입에 급급했을 뿐, 역사도, 전통도, 축적의 시간도 없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백 여 년의 역사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관심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있기까지 어떠한 여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모르고 관심도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의학은 어떤 천재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이 의학의 전부라고도 말할 수 없다. 지금도 의학은 축적의 시간을 겪고 있으며, 미래의 의학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 사회는 의사에게 자긍심을 부여하는 것의 가치도 알지 못한다. ‘평생 동물과 인간의 해부에 종사한 사람’이 ‘닥터’로서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의학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만 발전하고 번성할 수 있다. 의사를 무슨 치료하는 ‘쟁이’로나 알고, 그러다 뭔가 잘못되면 감옥에 넣어야만 정의가 구현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어떻게 좋은 의학이 나올 수 있겠는가.

새 의협 회관이 준공되었다고 한다. 이곳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곳에서든 백 여 년 동안의 역사라도 우리 의학이 거쳐 온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념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의사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그러한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 볼로냐 대학의 박물관은 일반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되며, 해부학 극장은 저렴한 입장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의사의 자긍심을 살리는 것은 이러한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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