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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권하는 자가 배신자다’
‘협상을 권하는 자가 배신자다’
  • 전성훈 변호사
  • 승인 2023.02.0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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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60)

김훈. 그가 이 시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작가 중 한명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2001년 무인 이순신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를, 2004년 예인 우륵을 다룬 소설 ‘현의 노래’를 세상에 내놓아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최고의 평가를 받던 시기인 2007년, 뜻밖에도 그는 문인 최명길을 다룬 소설 ‘남한산성’을 내놓았다. 최명길? 그는 병자호란 당시 항복을 주장했기에 후대에 ‘간신’이라고 수없이 비난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김훈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순신과 우륵에 뒤이어, 역사소설 3부작의 마지막으로 ‘논란 많은’ 최명길을 선택했다.
  
최명길은 우등생이었지만,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는 20세에 생원시(1차시)에서 장원으로, 진사시(2차시)에서 8등으로 급제했다. 그리고 10년간 관직생활을 하다가,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했음에도 사소한 일로 광해군에 의해 파직되었다.
  
최명길은 야심가였고, 동시에 유능한 관리였다. 그는 38세에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에 적극가담하여 1등 공신에 책봉되었다. 이후 요직을 거치며 활발하게 관직생활을 했다. 사관은 그를 “유능하고 개혁에 관심을 가졌다”고 평했다.
  
인조 정권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부정하고 ‘친명배금’을 국시로 내걸었다. 후금은 노골적 적대정책을 표방하는 조선을 1627년 침공했다(정묘호란). 순식간에 후금군은 황해도까지 진격했고, 인조는 황급히 강화도로 피신했다. 일단 전세는 교착되었지만, 도처에서 살인, 약탈, 강간을 당하던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대신들은 겉으로는 ‘명에 대한 은혜’를 거론하며 철저항전을 주장했지만, 속으로는 화친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다. 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명길은 이런 인조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총대’를 메고 화친을 강력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조선과 후금은 형제관계가 되었고, 후금군은 물러갔다.
  
후금은 더욱 강성해져 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국을 자칭했다. 그리고 조선에 사신을 보내 형제관계를 군신관계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조선의(=사대부들의) 여론은 격앙되었고, ‘사신의 목을 베자’는 상소로 대표되는 강경론이 조정을 뒤덮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명길은 또다시 홀로 화친의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명분을 외치면서도 이를 구현할 방법에는 침묵하는 ‘형식적 강경파’들은 도무지 설득되지 않았다. 조정이 의사결정을 못하여 몇 달간 답변이 없자, 청 태종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다(병자호란). 그리고 단 6일만에 개성에 도달하여 강화도로 건너가는 나루를 차단하자 조정은 패닉에 빠졌다.
  
조정 전체가 꼼짝없이 다 사로잡히게 생긴 상황에서, 최명길은 “청군 진영으로 가서 약속을 어기고 침략한 것을 따지겠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고, 다행히 듣는다면 시간을 벌 수 있으니 그 때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십시오”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혈혈단신 적진으로 간 최명길의 목숨을 건 시도 덕분에, 조정은 겨우 남한산성으로나마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의 과정은 모두가 잘 아는 것과 같다. 후세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대신들이 모두 작성을 기피했던 외교문서도 최명길이 작성했고, 이후 인조의 검토까지 마친 문서를 김상헌이 통곡하며 찢어버리자 최명길이 ‘이런 문서는 찢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찢어진 문서를 맞추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는 항복이 결정되자 강경파인 김상헌이 목을 매어 자결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는 어이없게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매어 자결하려고 했기에 당시에도 ‘쇼’라는 비난을 샀다. 게다가 인조가 굴욕적으로 항복하는 동안 김상헌은 동문으로 남한산성을 빠져나갔고, 고향에 돌아가서 잘 살았다. 3년 후 청에 끌려가 취조당할 때, 고향으로 몰래 돌아간 것에 대해 그는 ‘간언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이 신하의 도리다’라고, 왕이 항복할 때 수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늙고 병들어 걷기 어려워서 그랬다’라고 기묘한 변명을 내놓았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여 지난 1월 30일 협의를 시작했다. 2020년 의정합의 이후 3년만에 재개된 공식협의를 의료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1차 회의에서는 ‘필수의료 강화 및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우선과제로 선정했고, 이후 매주 정기적으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협의체의 결과물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한 의료계 ‘일부’ 인사들의 반응은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굴욕적 결과물이라고 비난하고, ‘결사항전’을 주장하면서, 협상에 나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등의 김상헌과 똑같은 반응 말이다.
  
‘협상을 권하는 자가 배신자다’라는 영화 ‘대부’의 멋진 대사는, 재미로 쓸 수는 있겠지만 다른 경우에는, 특히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한민국 의료계에서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의료계의 우군이 있는가? 국회, 정부, 여론 어느 것을 보더라도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부하면서 장렬히 파탄의 길로 갈 것인지, 명분을 내주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로 갈 것인지를 의료계는 부득이 결정해야 한다. 자존심은 버리기 싫지만 손해도 보기 싫다는 기묘한 강경론은, 상대방이 협상을 포기하고 실력을 행사하게 만들 뿐이다. 협상은 의협의 존재이유이고, 투쟁도 협상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의료계를 대표하여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어려운 협의를 계속하고 있는 의협이 최명길처럼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의료계 전체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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